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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연 Jun 22. 2023

유년의 뜰3

현재의 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남편이었다. 

새벽을 훌쩍 넘은 시간 일과를 마친 신랑이 혼자 잠드는 내가 걱정되어 전화를 했다. 

아마 잠이 안 온다는 나의 메시지를 보고 서둘러 전화한 듯 싶었다. 

괜찮은지 물어본다. 뭉클해진 마음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집으로 갈까?’ 우려 섞인 말투에 눈가에 차오른 눈물을 얼른 훔쳐내고 

'괜찮다' 이야기 하며 남편을 안심시킨다. 짧은 침묵이 신경 쓰였는지 오겠노라 고집을 피운다. 


토닥임을 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회사에서 집까지 왕복 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나의 불안함에 와 달라 말하기엔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걸 안다. 치기 어린 투정을 부릴 나이는 지났다. 애써 괜찮은 척 남편을 토닥이며 급히 전화를 끊는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를 걱정하는 이가 있단 사실에 감사하며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감은 눈을 뜬다. 

암소시 상태가 된 나의 동공 안으로 방안 풍경이 비친다. 

그 어린 시절 무서워하던 도깨비와 망태기 할아버지는 세상의 찌든 때가 묻은 나에게 잊혀진지 오래다. 

방안은 고요했다. 눈 깜빡이는 소리와 꼴깍 침 넘어 가는 소리만 방안가득 울린다. 


더 귀를 기울여본다. 뒷산에 사는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딱따구리의 부리질 소리도 창안을 뚫고 들어온다. 

풀잎에 앉은 풀벌레들의 힘찬 독주회 소리도 간간히 들려온다. 집안 가득 자연의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진다. 

잔잔한 고요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어린시절 시골에서 들었던 정겨운 소리에 미소가 번진다. 

머릿속을 가득 메우던 어지러운 망상들을 내려놓는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연다.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암흑 속에서 열심히 살아 대는 생명체들의 바지런한 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인다.

큰 들숨에 찬 공기가 내 코를 타고 부드럽게 폐로 들어간다. 

정신이 또렷해진다. 여느 때보다 안정된 마음을 느낀다. 

한참 밤공기를 들이마신 후 다시 침대 위 이불안으로 몸을 뉘인다. 

온몸에 따스한 온기가 돈다. 냉한 방안 공기도 보일러가 열심히 돌아준 덕에 따숩게 데워져 있다. 

몸도 마음도 따듯하다. 밤이 주는 안식에 심취하다 보면 어느새 눈꺼풀엔 무거운 잠이 내린다. 




생각해보면, 

그날 나는 부모가 쥐고 흔들던 내 생명줄의 위태로움에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는 건 죽음을 맞닥뜨린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어둠의 공포에서 오랫동안 떨어야 했다. 

살기위해서, 살고 싶어서 발버둥 쳐야만 했다. 

아무것도 가진게 없던 나는 울지 않으면 살아있음을 증명해 낼 방법이 없었다. 


이젠 부모의 손에 내 삶이 좌지우지 되지 않을 나이다. 

어느새 내 삶의 생명줄은 내손에 쥐어졌다.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 언제가 받아들여야할 냉엄한 현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해가 내린 저녁이 되면 어둠에 대한 공포가 밀려온다. 

어둠=죽음이라는 학습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일 뿐일 텐데도 여전히 혼자 남은 밤은 버려진 아이처럼 눈물이 맺힌다. 그럴때마다 나는 눈을 감고 두손을 모아 심장부근을 가만히 토닥인다. 


'괜찮다'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며 스스로 위안한다. 


어둠이 싫지 않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나는 더 이상 버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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