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여러 감정에 휩싸여서 울게 되다니.
왜 하필 엄마는,
왜 하필 로빗이랑,
왜 하필 아빠를 닮게 해서는,
왜?
왜!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입에 주먹을 쑤셔 넣고, 이빨이 손을 파고들도록 악물었지만 그래도 우는 소리가 새어 나와 결국 이불을 이빨이 떨리도록 깨물고 울어댔다. 문밖에 있는 엄막, 아니 로빗이 들을까봐, 로빗이 내가 자기와 엄마의 모습을 봤단 걸 알까봐 침대 속으로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다. 너무 잘 듣고, 너무 잘 아는 로빗인 게 이 순간 너무 싫다. 그런데 역시나. 로빗이 작은 소리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너 울어?"
로빗은 이불 속에 숨어든 나의 등을 감싸 안으며 따뜻하게 물었다. 내 인생 전체에서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봐오고, 돌봐주고, 지켜준 가증스러운 새끼.
"왜. 무슨 일 있어?"
이번엔 엄마가 내 방으로 뒤따라 들어오며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니. 엄마까지 왜 이럴까. 내가 정말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둘 다 날 속이려고 작정한 건가.
"이리 보자. 왜 그러는데."
로빗이 내 얼굴을 보려고 이불을 당겨봤지만 나는 이불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두 사람의 꼴을 보기가 끔찍하게 싫었다. 내가 모르기를 바라는 듯한 둘의 거짓말 섞인 걱정이 가짜로 느껴졌고, 내 등을 쓰다듬는 저 손이 나를 함부로 했던 사람이 쓰다듬는 것 같아 소름끼치게 싫었다. 억지 같은 위로. 모든 단어가 역겹고, 더 그들이 싫어지게 만들었다. 엄마가 점점 더 내곁에 다가오며 말을 거는데 나는 점점 더 인상이 찌푸려졌다.
"너 왜 그래. 정말 무슨 일 있어?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속상한 일 있어?"
속상하다. 속이 상한 건 맞는데 속상하다는 그런 얕고, 순진한 말로는 이 상황의 내가 설명되지 않는다. 왜 이토록 나를 더 속이려고 드는 거지? 나에게 이미 미안할텐데, 아니 미안해야 할텐데. 어쩜 이렇게 나를 더 속이려고만 드는 거지? 사과가 먼저 아닌가. 왜 모르는 척 하는 거냐고!
나는 이불 속을 더 파고 들었다. 엄마와 로빗과 말을 섞기가 싫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내가 지금 우는 이유를 나도 하나하나 다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저들이 이렇게 뻔뻔한 목소리로 나를 위로하는데 얼굴을 마주하느니 차라리 이 컴컴한 어둠 속에서 나 혼자 우는 게 나을 것이다. 그냥 제발 이제 내 방 밖으로 나가줬으면 좋겠다. 함께 있고 싶지가 않다.
"나가."
할 수 있는 한 힘주어 말했다. 울음 소리와 섞이지 않게 최대한 호흡을 멈추고 말했지만 너무 울어서 호흡이 가쁘고, 딸꾹질까지 해버려서 말은 말하는 듯 삼키는 듯 했다. 말마저도 내 맘대로 되지가 않으니 화가 더 치솟았다. 끈질기게 나가지 않고 자꾸 내 등을 껴 안고, 말을 거는 로빗과 엄마는 대체 나한테 미안하기는 한 걸까. 그럼 그냥 나가기나 하지.
"나가라고."
"뭐라고? 다시 얘기해줄래?"
로빗이 세상에서 가장 상냥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그 목소리가 너무 낯설고, 차갑게 느껴졌다. 단 한 음절도 로빗의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특히 저런 가식의 목소리는 더욱. 나는 그 껍데기 밖에 없는 위로에 더 화가 솟구쳐 이불 속에서 소리를 질렀다.
"나가라고! 둘 다!"
"아니, 이유를 알아야 할 거 아냐! 이렇게 우는 데 어떻게 혼자 두고 가!"
"혼자 두고 그냥 가라고..."
나는 울음이 뒤덮은 목소리로 엄마의 성난 목소리에 답했다. 한 마디 한 마디 뱉을 때마다 더 상황도, 사람도 싫어지는 감정. 내가 마주할 저 사람들이, 내 머릿속을 뒤덮은 그 장면이 영상 화면처럼 전원을 끄면 내 곁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꺼져줘.
"무슨 일인지 말 안 할 거야? 엄마 하나, 둘, 셋하면 이불 들어 올린다."
"그래도 강제로 그렇게 들어올리는 건 안 좋지 않을까요?"
엄마도 내가 완강히 버티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강력하게 얘기했다. 이번에는 로빗이 말리려 들었다. 아까는 아빠 역할, 아니 엄마의 애인 역할, 그리고 지금은 내니 역할이다 이건가? 생각해볼수록 징그러운 로빗의 말에 나는 비웃음이 일었다.
"그냥 가. 말하기 싫어."
"말하기 싫다고 안 할 거야? 대화를 해야지 사람이."
사람.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야 할 것을 아는 사람이 로빗을 그렇게 만들고, 로빗과 그런 짓을 했다니. 어쩜 한 마디, 한 마디가 이렇게 모순적일까.
"하나."
"그냥 가!"
나는 울면서 소리쳤다.
"둘."
"우리 그냥 애 좀 쉬게 두고 나갈까요?"
로빗도 엄마를 말려본다.
"셋."
나는 이불을 더 움켜 잡았다. 손 끝이 하얘지도록 이불을 붙잡아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화가 잔뜩난 엄마는 이불을 거칠게 잡아 들어 올려 이윽고 그 야밤에 밝디 밝게 조명을 켜 둔 내 방으로 나를 노출시켰다. 나는 눈을 잔뜩 찌푸리며 마주해야 했다. 엄마와 로빗을.
"하지 말라니까! 그냥 가! 꺼져!"
"너 엄마한테 이게 무슨 말버릇이야!"
엄마는 이불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나에게 한 발 다가섰다. 이제는 어느새 동등해진 엄마와 나의 눈높이. 나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주먹을 꽉 쥔 채 엄마를 쳐다봤다. 로빗은 그런 나와 엄마 사이로 끼어 들면서 엄마를 먼저 한 번 달래듯 쳐다보고는 나의 어깨를 잡았다. 그새 변신해서 아빠가 아닌, 평소와 같은 모습의 로빗. 모든 게 거짓인 야비한 존재.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일단 자. 응? 자고 일어나서 내일 얘기해. 엄마는 내가 데리고 나갈게."
로빗은 내 양팔을 잡으며 나를 다독이려고 이야기한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 촉촉한 눈망울, 따뜻하고 단단한 손. 나는 그의 말과 행동에 순간적으로 생각이 멈추고, 몸이 먼저 반응해버렸다. 내 팔을 잡은 로빗의 양팔을 밖으로 쳐내고는 로빗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한 것이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엄마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는 당장 로빗 앞으로 다가와 얼굴을 매만지며 괜찮은지 물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맞은 것처럼 구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더 분노가 차올랐다.
"엄마."
"너, 너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엄마는 딱히 아파하지도 않는 로빗을 보며 걱정이 가득찬 얼굴로 로빗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울어서 퉁퉁 붓고, 빨개진, 머리가 엉망이 된 내 얼굴이 아니라 로빗의 얼굴을 말이다. 로빗은 금세 내 표정을 살피고는 엄마를 살짝 밀어냈다.
"괜찮아요."
"아니 괜찮긴 뭐가 괜찮아.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네, 진짜 괜찮아요."
진심으로 걱정하는 엄마. 그리고 아까 문밖에서 엄마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보던 젊은 아빠의 표정과 비슷한 얼굴로 엄마를 안심시키는 로빗. 내가 왜 여기 있는 걸까.
"둘 다 나가. 당장."
"너 엄마 진짜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사춘기라 그런 거야? 엄마랑 담 쌓고 살 거야?"
"그러던가."
"뭐? 그러던가? 그게 너 엄마한테 할 소리야?"
"엄마나 잘해."
"뭐? 얘가 갈수록 왜 이래?"
"엄마나 잘하라고."
"내가 뭘 못 했어? 내가 너한테 못 해준 게 뭐가 있어?"
"그래 잘했어. 다 잘했지 엄만. 나도 잘 키웠고. 아니다. 로빗이 키웠나?"
"뭐?"
"맞네. 로빗 잘 샀네. 얼마나 좋아? 로빗 하나 사니까 애도 키워줘, 집안일도 해줘, 애인도 해줘. 진짜 좋겠다, 그치?"
"너..."
엄마는 놀라 멈춘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
"너..."
엄마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는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을 쏟아 냈다. 나는 우는 엄마가 미련해 보였다. 자기의 선택을 통제하지도 못 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 한 사람. 자신의 생(生)도, 자기 자식의 생도 다 휴머노이드 인공지능에 맡겨 버린 사람. 결정권만 있고 실상은 아는 건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 같아서 권력을 다 잃어버린 왕. 로빗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 하는 능동적으로 연약한 존재. 내 엄마. 나는 저런 엄마의 아들.
"다른 사람인 것보다는 낫잖아."
결국 뱉어버리는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미련한 엄마의 말.
"너희 아빠 얼굴이 아니라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 얼굴보다는 낫잖아!"
로빗은 아직도 우는 엄마의 어깨를 감싸 밖으로 데리고 나갔고, 내 얼굴을 잠시 돌아보았다. 나도 로빗을 쳐다보았다. 나는 미련한 엄마의 아들이 맞다. 맥이 탁 풀려 침대로 돌아가 앉으면서도 울면서 말하는 엄마의 말에 진짜 다른 남자보다는 아빠 얼굴인 로빗과 엄마가 연애를 하는 것이 좋은지 생각을 해본다. 그럼 나도 다시 아빠가 생기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