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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Oct 18. 2023

진심 어린 배려의 힘

앞머리를 짧게 자른 건 중학생 시절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나의 앞머리는 늘 귀 뒤로 넘길 수 있을 정도의 길이었다. 약 20년 만에 눈썹이 보일 듯 말 듯하게 앞머리를 잘랐다. 몇 년간 생머리를 유지하다 보니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까지 앞머리를 짧게 자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머리 스타일 사진을 미용실 원장님께 보여드렸을 뿐이었다. 머리를 다 하고 보니 앞머리가 이렇게나 짧아져 있었다. 몇 년 만에 파마도 했는데 가장 선호하지 않는 스타일이 나왔다. 미용실에서 알려준 대로 아무리 머리를 매만져도 정리가 되질 않는다. 머리카락이 폴폴 날아다녀서 끝내는 질끈 하나로 묶게 된다. 


 미용실 원장님과 소통이 잘되지 않은 건 아닌 듯하다. 이유를 찾아보자면 집 앞에 새로 생긴 미용실을 갔기 때문이다. 원래 다니던 미용실에 갔더라면 원하는 스타일이 나왔을 게 분명하다. 몇 년 전에도 원래 다니던 미용실에서 같은 사진을 보여주고 머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만족스러운 스타일이 나왔다. 


 내가 6년째 다니는 미용실은 집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다. 집 근처에도 미용실이 많은데, 시골이어서인지 갈 만한 곳이 마땅하지 않다. 약 30분 거리에 택지지구가 새로 생기면서 몇 개의 미용실이 들어왔지만, 예약이 쉽지 않았다. 모험을 하는 것보다 기존에 다니는 곳으로 가는 게 더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6년째 미용실을 멀리 다녔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미용실은 걸어서도 갈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가깝다. 차로 이동하면 3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거리뿐 아니라 화사한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었다. 여기를 가면 두 아이가 학교에서 오기 전에 머리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마침, 오픈한 지 3일밖에 되지 않아 예약 없이도 머리를 할 수 있었다. 


 동네가 발전해서 이제야 머리를 집 근처에서 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방문했다. 미용실 원장님이 머리 상태를 보시고는 파마가 잘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때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다양한 모발을 만져보지 않은 분인 것 같다는 걸. 나는 파마가 무척이나 잘 나오는 편이다. 세게 말면 빠글빠글하게 된다. 언젠가는 다른 미용실의 어느 미용사분이 파마를 세게 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나는 재빠르게 “저는 늘 파마가 잘 나온다는 소리를 들어왔어요. 부스스한 걸 좋아하지 않아서 깔끔하게 나왔으면 좋겠어요. 굵은 웨이브를 하고 싶어요.”, 하고 말했다. 미용사분이 매직 세팅으로 하면 된다기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내가 보여준 사진에는 앞머리가 귀밑까지 내려와 있었는데 짧아진 앞머리는 어찌 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예상 밖의 스타일이 나왔다. 머리를 마치고 놀란 게 있었다. 머리 하는데 4시간 30분이나 걸렸다는 것이었다. 




 평소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서 척추가 좋지 않은 편이라 언제 끝나는지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았다. 긴 기다림이 끝나고 머리가 마음에 드시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조금은 어정쩡한 표정으로 “네. 마음에 들어요. 많이요”,라고. 머리를 하는 동안 미용실 원장님은 오는 손님을 받지 않았다. 오롯이 나에게만 정성을 다해 주었다. 머리를 하다 보면 중간에 기다리기도 해야 해서 커트를 원하는 손님을 받아도 될만한 상황이었는데도…. 나는 미용실 원장님께 왜 손님을 받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생각지도 못한 답이 돌아왔다. “한분 한분께 정성을 다해 드리고 싶어서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처럼 정말이지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미용실 원장님은 셀프바인데도 커피와 간식을 가져다주고, 중간중간마다 불편한 곳은 없는지 반복해 묻고, 샴푸 할 때마다 두피와 목을 안마해 주었다. 머리를 만지는 손길마다 얼마나 조심성이 묻어나던지. 모발이 상하지 않게 하려는 거라고 했다. 계산하고 나오면서도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받았다. 그러면서 종이가방 하나를 손에 들려주었다. 샴푸와 트리트먼트였다. 원하는 스타일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머리가 마음에 든 건 처음이었다. 물론 미용실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리를 잡기 위해 정성을 다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성을 넘어서는 배려를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요즘 우리 동네가 날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용인의 마지막 남은 시골인 이곳에, 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와 스타벅스가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주상복합 아파트와 소형 아파트가 입주하기도 했다. 늘어나는 가구 수처럼 허허벌판에 건물이 하나, 둘씩 올라가고 있다. 그 건물에 이러저러한 가게들의 간판이 달리고 있다. 가게가 새로 생기면 호기심에 한 번씩 가보게 된다. 그러던 중 얼마 전에는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술을 마시면서 장사를 하는 사장님도 있었고, 여기서는 이런 고급음식 못 먹어봤을 거라고 했던 사장님도 있었고, 손님이 많이 오는 게 싫다고 했던 사장님도 있었고, 음식값이 적혀 있지 않았는데 부르는 게 값이었던 식당도 있었다. 


 새로 오픈하는 가게 사장님들의 공통점은 다들 서울에서 장사하다가 내려왔다는 것이다. 집 근처에 생긴 미용실 원장님도 강남에서 헤어디자이너로 일하다 왔다고 했다. 서울에서도 여기서처럼 했을지 알 수 없다. 다만,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가장 중요한 건 태도라고 여긴다. 잘 살아낸 오늘이 좋은 내일을 만들 듯, 지금의 태도가 긍정적인 미래를 만든다. 




 퇴근한 남편이 내 머리를 보고 “엇! 머리 했네? 괜찮아?”,라고 물었다. 나는 “응. 마음에 들어.”하고 답했다. 깔끔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걸 잘 아는 남편은 마치 “오잉? 뭐지?”,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람들은 능력보다 최선을 다하는 누군가를 볼 때 감동한다. 진심 어린 배려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를 마음에 들게 뒤바꿔 놓는 힘을 가졌다. 밥벌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을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감동과 진심을 받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부스스한 머릿결도, 짧은 앞머리도, 어색해서 그렇지 어딘가 묘한 귀여움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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