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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Jan 03. 2023

새해엔 잔잔하게 무계획

 

새해가 밝았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했을 새해 첫 날도 나에게는 평범하고 그저 그런 하루로 지나갔다. 남편은 여느 일요일과 마찬가지로 점심을 먹고 출근을 했고, 우리 셋은 오전 해가 지나간 컴컴한 집에 남겨졌다. 아이들은 한 살씩 더해진 나이가 좋다며 하루종일 나를 보며 웃었다. 그런 아이들에 비해 난 종일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무심하게 지나가는 시간 중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에 무덤덤했다.

새해 첫날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제와 똑같은 해가 뜨고 지고. 똑같이 밥을 차리고 치웠다. 미래도 과거도 없는 사람처럼 아이들을 돌봤다. 그런 에게 한 해의 거창한 계획 같은 건 없다. 시간은 꾸준히 흘러가고 나는 그 시간 속 어딘가에 붙어있다.




"엄마는 나 사랑하지?"

아이는 목욕을 하고 나와 발가벗은 몸에 로션을 잔뜩 발라놓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응? 엄청 사랑하지."

"근데 내가 엄마를 더 사랑한다?"

"아닌데? 엄마가 더 사랑하는데?"

"엄마가 나 사랑하는 거 아는데, 내가 더 더 사랑해."


더 이상 아이의 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내 사랑이 더 크다고 아이의 사랑을 부정할 순 없었다.

아이들은 나를 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아무리 내 사랑을 키워도 아이들의 사랑 앞에선 작아지고 미안해지고 만다. 엄마의 사랑은 그뿐이라고, 그 크기뿐이라고 제멋대로 정해놓고 더 큰 사랑을 원한다. 자식이니까, 내 아이들이니까 매일 사랑을 만들어 꺼낸다. 아무리 노력해도 커지지 않는 사랑을 열심히 만들고 또 만든다. 앞도 뒤도 없이 아이들만 보고 매달리고 있다.


연말부터 연초까지 내 머릿속엔 온통 아이들 뿐이었다.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아이들의 떡국, 아이들의 방학. 전부 아이들에게 맞춘 시간표를 짜놓고 우왕좌왕 정신이 없다. 내 책상 위 달력엔 아이들 스케줄이 빼곡히 쓰여있다. 노트북은 며칠째 전원이 켜지지 못했고, 책들은 시작만 하고 다 읽지 못한 채 쌓여만 있다.

그래도 억울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한 해의 시작이 전처럼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바쁘면 바쁜 대로. 그냥 이렇게 시간 따라 아이들 따라 무덤덤하게 산다.

 


잔잔한 1월이다. 시작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설렘이라는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숫자가 바뀐 또 하나의 하루일 뿐 나는 언제나 그 하루 이곳에서 그대로다. 중요한 건 지나가는 숫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나를 위한 마음. 깊이 슬퍼하지 않고 깊이 떨어지지 않는 마음. 그 마음 하나 꼭 챙길 것이다. 설레지 않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니다. 어쩌면 내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뜻일 수 있다. 감정의 기복이 너무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않고 잔잔한 지금. 어느 때보다 평화롭다.


오늘도 아이들은 아침부터 깔깔대며 아침을 먹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 몇 가지를 꼽으라면 그중 하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일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을 울타리 삼아 나는 그 안에서 고요해진다. 아이들 소리가 나의 불안감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막아준다. 오늘도 불안하지 않고 덤덤한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올 한 해는 이렇게 보내고 싶다. 오늘처럼 잔잔하게 그리고 평온하게.







사랑하는 작가님들!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항상 작가님들 글을 읽으며 힘도 얻고 용기도 얻어가요. 참 감사합니다.

올 해도 많은 글들로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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