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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Nov 08. 2022

머리만 대면 잠이 찾아온다


불면증은 끝났다. 서서히 끝이 난 건지, 갑자기 끝나버린 건지 모르게 불면증이 없어졌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만보 이상 걸어도 새벽에 잠이 오지 않는 날들이 오래였다. 새벽 2,3시까지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써도 눈이 감기지 않아 침대에서 긴 시간을 뒤척여야 했다. 그러고도 이른 아침이면 눈은 떠지고 정신은 몽롱했다. 마치 누군가 머릿속에 시커먼 물감을 몇 방울 떨어트린 듯. 흐릿해진 눈빛으로 정신을 붙들다 보면 어떠한 소망도 없는 오늘과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게 된다. 그렇게 검게 변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또다시 자정이 넘어가면 차곡차곡 모아진 응어리들이 잠 못 들게 방해하곤 했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모든 게 풍요롭고 평화로운 계절이 나에게까지 닿았다. 찬바람 쌩쌩 불던 곳이 어느샌가 포근하게 바뀌었다. 정신이 건강해졌다고 해야 할까. 매일 아침 이유 없는 눈물과 마음에 버겁기만 했던 날들이 사라졌다. 전과 같이 제자리에서 돌아가는 일상은 같은데 다른 마음가짐으로 보낼 수 있는 날들이다. 불안하지 않고 공허하지 않은 날들이 왔다.


평화에도 부작용은 있었다. 편안한 마음이라 그런지 잠이 쏟아졌다. 밤 10시만 되어도 눈이 감겨 꾸벅꾸벅 졸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자 일어난다. 밤늦게 퇴근한 남편을 챙겨주고 노트북 앞에 겨우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자니 다시 눈이 감겨온다. "아구." 하면서 눈 번쩍 한번. "아!" 하면서 다시 번쩍 정신을 차리다가 다시 감겨오는 눈꺼풀에 포기를 선언한다. 결국 노트북을 덮고 침대로 가 이불도 덮다.

그렇게 일찍 잠이 들었는데도 아침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10번의 알람 소리를 해제한 후에 겨우 일어나 한발 한발 무겁게 주방으로 향한다. 오후가 되면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내느라 안간힘을 쓴다. 분명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는데 머리는 왜 이렇게 무거운지. 청소를 마치고 곧장 바닥에 쓰러져 눈을 깜빡인다. 릿느릿.

내가 잠에 빠진 건지, 잠이 자꾸 나에게 쏟아지는 건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잠을 참고 또 참는다.




잠과 나의 거리는 멀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를 낳고서 잠을 포기하자고 마음먹었던 기억이 난다. 신생아를 돌본 적이 있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도 잔 것 같지 않음을.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지 못함을. '그래. 잠을 포기하자. 엄마는 원래 못 자는 것이다' 차라리 체념했었다.

아이가 조금 자란 후에도 나의 수면시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에 몇 시간 잠자지 않는 것이 습관이 돼버린 것일까. 잠이 줄어든 것일까. 잠자고 싶어도 잘 수없는 불면증이 찾아왔다. 밤엔 항상 먼저 잠든 남편의 옆에 뒤늦게 누워 잠을 청했다. 옆에 누워 졸리다는 말 대신 "잠이 안 와.", "잠을 못 잤어."라고 말했던 기억만 있다.


매일 괴로웠다. 깨어있는 시간이. 잠들 수 없는 시간들이. 잠이 오는 대신 어둠이 쏟아져 왔다.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아 잠들지 못했는지 매일 밤 검은 천장을 보며 어딘지 모를 나락의 끝으로 걸어갔다.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겠다. 밤 10시. 아이들을 재우면서 잠이 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기 시작했다. 너무 졸려서 일어나지 못하겠다며 퇴근한 남편에게 손 한번 흔들어주고 먼저 잠들기 일쑤였다. 좋았다. 쓸데없는 생각이 걷히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느낌. '잠은 좋은 것이구나!' 하면서 시간이 나면 찾아오는 잠을 반겼다.


푹 자고 일어나면 개운하지만 열흘 넘게 잠에 취해 있으니 시간이 아깝기도 하다. 브런치는 글을 쓰라고 자꾸만 부르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노트북 앞까지 몸을 옮겨 보지만 그마저도 졸음에 지고 만다. 잠은 강력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스트레스가 잠시 머릿속에 머물다가 잠에 묻혀 버리고 만다. 어떠한 고민도, 스트레스도 잠에 치유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잠을 좀 자야겠다. 잠은 포근하게 다가왔다가도 언제 다시 떠나갈지 모른다. 잘 수 있을 때 푹 자고, 깊게 자고, 행복하게 자야 한다. 눕자. 아무 걱정 없는 밤이 올 수 있게.


(잠이 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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