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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Feb 02. 2023

나는 설거지 안 하는 장손 며느리


장손 며느리. 무거운 이름을 달고 있다. 무려 7대 장손 며느리다.


어머님은 6대 장손며느리가 되시겠다. 내 아들은 8대 장손이고. 올해 9살이 된 우리 집 8대 장손은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다. 아기가 태어난 그날 시할머니와 시부모님은 전남 보성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셨다. 보성에서 삼척까지. 시할머님은 병원 유리창 너머 간호사에게 아기의 기저귀를 풀어 고추를 보여달라 하셨고 한참 동안 아기를 보며 웃다 가셨다.


아들이 귀한 시골집. 대를 이어갈 아들을 낳지 못했다면 큰일이 났을 법한 시댁. 지금 시대에 이런 일이 있구나 하며 시골 분위기에 적응하는데만 9년이 걸렸다. 이렇게 보수적인 시골집에서의 명절은 겪어보지 않아도 두렵고 싫었다. 불공평하고 부당한 일만 있을 것 같은 불안함. 그 안에서 내가 겪게 될 답답한 일들. 생각만 해도 싫었다. 며느리의 두려운 명절.


그런데 내 오해였을까. 막연하게 싫다고 외쳤던 명절이.




"너는 그냥 들어가 쉬어라~"


내가 시골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주방은 계속 돌아간다. 가스레인지에 냄비와 프라이팬이 번갈아가며 오르락내리락 달궈졌고,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은 물에 빠졌다 닦아지길 반복했다. 그럼 난 어머님 옆에 서거나 식탁에 앉아서 멋쩍게 웃다가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꾸만 방으로 들어가라는 어머님. 차례상에 놓을 음식도 나는 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옆에서 말동무만 해드렸다. 전은 작은어머님께서 잘 부치신다며 나는 손도 못 대게 하셨다. 밑간을 해둔 동태에 밀가루라도 묻혀볼까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이 하는 게 편하고 좋다면서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놀아라 하셨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과일 좀 먹어라. 점심엔 갈비 먹을래? 삼겹살 먹을래? 내려가서 애들이나 놀아줘라. 놔둬라. 내가 하면 빨리 한다. 여긴 내가 치울 테니 넌 씻고 쉬어라. 가서 놀아라.


아이들이 어릴 땐 애들 보느라 정신이 없긴 했다. 엄마 껌딱지들은 고맙게도 시골집에 와서도 내 옆에만 있고 싶어 했고, 나는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느라 바쁜 명절에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껌딱지도 뗀 9살, 7살인데. 그저 자꾸 쉬라고만 하신다.




다혈질. 감정의 그래프가 위아래로 크게 요동치는 스타일이다. 기분이 좋을 땐 기쁜 마음을 어떻게 서든 표출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떠벌려야 가라앉았다. 기분이 나쁠 땐 지옥불 위를 걸으며 온몸을 불로 휘감아 뜨거운 재를 뚝뚝 흘리고 다녔다. 눈에 보이는 사람마다 지옥불씨를 톡 하고 떨어트리며 꼭 티를 내기도 했다.

그런 나의 감정을 직선가까이 끌고 와 마음에 평온을 갖게 해 준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좋으면 "좋네" 한 마디, 싫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남편이 나와는 달라 참 좋았다. 극으로 치닫는 나의 기쁨과 짜증에 대해 한마디도 나무란 적이 없는데 나는 어느새 남편의 성격에 젖어들어 남편의 감정선과 비슷하게 살고 있다.


명절도 그렇다. 막연한 두려움에 몸서리치게 싫었다. 불편한 시골집, 불편한 잠자리, 한상 가득 차례상, 밀리는 귀성길. 이 모든 게 싫어 도망치고만 싶었다. 피할 수도 없는 명절에 받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다.

장손며느리 9년 차. 이번 명절은 좀 이상했다. 익숙해져서 그런가. 8시간이나 걸리는 귀성길도, 추워서 덜덜 떨리는 화장실도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명절이라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능청스럽게 웃으며 인사도 잘했다. 아무런 스트레스도, 짜증도 일어나지 않았다. 좋고 싫음도 없이 나는 그곳에서 평온했다. 명절에 시댁에서 말이다.




"부당하지?"


차례를 지내고 아침상을 차리는 중이었다. 남자들은 모두 방에 들어가 버리고 여자들만 주방에 남아있었다. 작은어머님은 나에게 물어왔다. 부당하지 않냐고. 여자들만 여기서 상 차리고 있는 것이 말이다.

남자들을 주방에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 아니다. 주방에 오면 잘 왔다 하며 이것저것 일을 시킬게 뻔하니 오지 않고 도망가 있는 것이다. 어른들은 도망가 있는 사람을 굳이 부르지 않는다. 내가 설거지 안 하고 방에 있을 때 부르지 않는 것처럼.


"이제 그러려니 해요."


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쉬게 하고, 내가 조금 더 일하면 되는 거지. 이런 마음을 갖게 한다. 남편을 따라 평온해진 마음처럼 시댁에서도 너그러워진다. 점점 스며들어서.

아침 설거지는 꼭 해야지. 주방에 서있던 나에게 앉아라 앉아라 하신다. 들고 있던 수세미를 빼앗고 들어가라 들어가라 하신다. 빠트리는 물건 없나 확인 잘하며 애들이랑 짐이나 싸고 있으라며 주방에서 쫓아내신다. 나는 설거지도 안 하는 장손며느리. 복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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