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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Feb 15. 2023

나무야, 아빠가 나를 울렸어


그날의 문제는 고무나무였다.

나에게 붙은 '죽음의 손'이라는 별명에게 도전하듯 무엇에 홀려 나무 한 그루를 차에 싣고 왔었다. 집에 초록나무 하나 놓고 싶은 마음도 있긴 했다. 햇살 가득 친정집에 어느새 하나둘씩 늘어나는 엄마의 식물들이 부럽기도 해서. 잘 키워내는 엄마가 예쁘기도 해서.

나도 엄마 딸인데 나무 하나정도는 잘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작은 나무 한그루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도 조심조심했다. 화분 하나 팔에 꼭 안고 집 안에 들어왔을 뿐인데 왜 마음까지 풍선처럼 부푸는 건지.  


이미 나의 '죽음의 손'을 몇 번 경험한 남편과 아이들은 반쯤 뜬 눈으로 나를 봤다. 못 믿겠다는 거지.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무순과 다육이까지 저세상으로 보내줬지만 과거의 나는 잊어줘. 고무나무 정도는 잘 키울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분갈이하며 눈에 들어온 날파리 한 마리. 나무뿌리를 맴돌며 흙을 제집처럼 떠나지 않았다. 이건 내 '식물 키우기 준비 목록'에 없는 일이었다. 분갈이하며 없어졌던 뿌리파리는 다시 나타났다. 친구들과 함께. 나의 소중한 고무나무를 떠나지 않는다. 그곳이 너희 집이구나. 게다가 너무 과습이었는지 흙 표면에 회색 곰팡이가. 아. 엄마, 도와줘.



검색을 해서 찾아볼 수도 있지만, 주말이니까. 엄마 아빠 뭐 하고 있을까 안부전화를 걸어봤다.


"아, 집에 벌레 죽이는 거 있니? 그거 뭐지? 에프킬라! 그거를 조금씩 뿌려봐. 분갈이는 3월에 해야 해. 지금 당장 하지 말고. 물은 더 주지 말고 한동안 놔둬봐. 너무 습해서 그래."


"응. 알겠어. 엄마 아빠는 집에 있어? 뭐 해?"


전화기 너머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딸~~ 보고 싶어. 나는 손주들보다 우리 딸이 더 보고 싶어. 다음 주엔 꼭 놀러 와!"


아빠는 보고 싶다는 말이 전화기를 통과해 멀리 있는 딸에게 닿을 수 있도록 힘주어 말했다. 사랑이 가득 담긴 말랑하고도 단단했던 아빠의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저 래서부터 목까지 무언가 차올라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 힘들었다. 다음에 또 전화하겠다 서둘러 끊어버렸다. 마지막 단어의 끝글자는 내뱉지도 못한 채.


사랑과 그리움이 뒤엉킨 울퉁불퉁한 어려운 감정. 그리고 36년간 조금씩 쌓여 있던 미안함과 고마움. 또 부모님에 대한 뭐라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들이었다. 엄마아빠와 나. 복잡하고도 깊은 부모자식 사이. 수만 가지 감정이 평생 켜켜이 쌓이고 쌓였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이름 없는 감정들은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한 채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그날처럼.

아빠가 나를 보고 싶다고 했을 때 불쑥 올라온 알 수 없는 감정들은 자꾸 내 눈앞을 가렸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한참. 주방에 서서도 한참. 고무나무 앞에서도 한참.


내 옆으로 쑥 다가온 딸아이를 보고 급하게 얼굴을 닦았다. 옆에서 나와 같은 자세로 쭈그려 앉은 아이는 "이 나무 괜히 산거 아니야?"라며 뿌리파리를 째려봤다. 나도 같이 째려봐주고 파리가 자기한테 올 것 같아서 싫다는 아이를 안아주었다.



고무나무는 물을 덜 주었더니 습한 환경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나무를 살펴볼 때마다 아빠의 보고 싶다는 말이 아른거린다. 나의 고무나무 잎사귀 하나하나의 끝에는 보고 싶다는 말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쑥쑥 키워봐야지. 반짝이는 햇살 아래 식물과 함께 예쁘게도 서있던 엄마를 생각하며. 아빠의 목소리를 생각하며. 오늘도 아침해를 따라 화분을 옮겨주었다. 작은 잎사귀 하나도 조심해 가면서. 나의 고무나무. 잘 키워봐야지. 꼭.


('죽음의 손' 파이팅!)



엄마의 식물들. 지금은 두 배쯤 늘어났다. 초록초록.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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