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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Jun 16. 2023

저녁노을이 지나가는 시간

 

한낮의 뜨거운 햇빛이 점점 저녁까지 이어져온다. 놀이터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노는 아이에게 6시에는 꼭 집에 가자는 약속을 받아내지만 10분이 미뤄지고 또 10분이 더 미뤄진다. 분명 저녁시간임에도 환한 하늘 탓에 귀가시간이 늦어지는 요즘이다. 두 아이들을 데리고 겨우겨우 집에 오는 일부터 진이 빠지지만 신발을 벗고 집안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내 일의 시작이다.


이제는 혼자 씻을 줄 아는 첫째와 머리만 감기면 되는 둘째 덕분에 예전보다는 수월해지긴 했다. 그래도 세수는 했는지, 거품은 잘 헹궜는지 오며 가며 물어보느라 입과 발걸음이 바쁘다. 씻고 나온 아이들 머리를 순서대로 말려주고 벗어놓은 빨랫감을 정리해 놓고는 서둘러 주방으로 가서 저녁준비를 한다. 저녁을 차리고, 먹이고,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 공부까지 조금 봐주고 나면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다.


이제 좀 쉬어볼까 여유가 생기니 느껴지던 어둠. 환했던 하늘이 어느새 어두워져 있다. 분명 밝음과 어둠 사이엔 오렌지빛과 핑크빛 예쁜 색들이 존재했던 것 같은데. 저녁놀은 바쁜 우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버린다.




결혼 전엔 도심과는 동떨어진 주택 2층에 살았다. 앞쪽으론 넓은 마당과 옆쪽엔 2차선 도로와 냇가뿐이어서 항상 풀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좁은 집이지만 창문이 많았던 집. 주방과 거실 그리고 안방으로 연달아 5개의 창이 있었는데 그 창들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이 상당했다. 햇빛을 가려줄 구조물 하나 근처에 없던 주택이라 사방에서 들이치는 햇빛을 온 집안이 그대로 받는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햇빛이 내리쬐는 집에 있다 보면 저녁즈음 노을이 지는 시간엔 머리가 아파왔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일하러 아침 일찍 나가시고 언제나 혼자서 맞이하던 저녁놀. 그 주황빛 따스함을 견디느라 나는, 내 머리는 지끈지끈하고 쓸쓸해했다.


온 하늘이 오렌지색으로 물들던 그 시간이면 약상자를 꺼내고 물을 따랐다. 머리를 붙잡으며 타이레놀 하나 혹은 두 알 입에 넣던 그 시간. 어둠은 언제 내려오나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아이들이 각자 침대에 누워 나의 뽀뽀를 기다린다. 아직은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을 나이. 잠자기 전 뽀뽀 3번의 행복이 아이들을 웃으며 잠들게 한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 덕분에 충족감이 가득 찬 채 밤을 맞이한다. 정신없고 지치는 매일의 저녁이지만 그런 저녁이기에 주황빛 하늘을 보지 않을 수 있다. 매일 삼키던 타이레놀도 약상자 안에서 꺼내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한낮을 견디면 아이들이 온다. 어떤 무거운 생각도 들지 않는 저녁시간이 있어 다행이다. 아픔도 우울함도 쓸쓸함도 없는 마법 같은 시간. 어쩐지 악역이 되어버린 저녁놀은 빠르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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