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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Nov 11. 2023

자박자박 가을이 간다


늦은 밤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달리는 차 안 뒷자리에는 본인들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어버린 아이 둘이 새근거리고 있었다. 무거운 밤공기가 차 안 전체를 뒤덮고 나는 그 속에 운전대를 잡고 앉아 열심히 집으로 차를 몰았다. 눈앞에 보이는 건 오직 달려가는 불빛들 뿐. 캄캄한 밤하늘과 도로 위에는 앞으로 또 뒤로 움직이는 불빛들만 일렁였다.


어두운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청각에 감각이 쏠리게 된다. 아스팔트 위를 세차게 지나가는 바퀴들 소리, 밤공기가 바람이 되어 자동차 옆에 부딪히는 소리, 내 오른쪽 발끝을 따라오는 자동차 엔진 소리, 그리고 작고 몰캉거리는 아이들 잠자는 소리.


가끔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소리에서 위안을 얻을 때가 많은데, 어두운 밤 한가운데 있다 보면 낮보다는 차분한 공기에 소리가 더 잘 전달되어 들리게 된다. 그날도 여러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알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 피어올라 힘내서 살아가자는 생각을 했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 숨소리가 자꾸자꾸 내 귀로 날아와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건가 싶기도 하고.



요즘은 가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바람이 나무를 쓸어주는 소리, 나뭇잎들이 바람에 휩쓸리는 소리,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이 소곤대는 소리, 그런 낙엽을 사박사박 밟는 내 발걸음 소리.

여름과 겨울 사이엔 모든 것을 낙엽처럼 떨어트릴 것만 같은 가을이 있다. 여름의 푸르름도, 놀이터의 활기참도, 사람들의 마음마저도 툭 하고 떨어트리곤 하는 쌀쌀맞은 가을. 이런 차가운 가을 속에서 가장 어려운 건 내 마음 하나 떨어지지 않게 잘 붙들고 있는 것인데, 그나마 지금까지 잘 버틸 수 있었던 건 어딘가 모르게 따뜻한 가을 소리 덕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며칠 전 가을비가 내렸다. 이 비가 그치면 더 추워지겠거니 했는데 역시나 더 매섭게 부는 바람에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가을 소리도 달라졌다. 사박사박거리던 내 발걸음이 자박자박 둔탁한 소리를 내고, 사락거리던 나뭇가지들이 허공에서 휘청거리기만 한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는 중인가 보다. 이제는 쌀쌀맞은 가을마저 아쉽다. 겨울은 가을보다 더 거대하고 매몰차니.


아침에 나가는 아이들의 점퍼에 달린 지퍼를 끝까지 올려주고 내 손은 주머니 속에 꽁꽁 감췄다. 아마도 겨울은 커다란 적막으로 또 한 번 나를 감싸리라. 벌써 두려운 마음이 들어 오늘도 가을을 걸어본다. 자박자박.




낙엽이 뒤덮은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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