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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목 May 19. 2024

사랑의 나이

우리는 사랑을 모른다.

얼마 전에 재미난 일이 있었습니다. 당사자는 썩 재미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A는 얼마 전에 첫사랑을 군대로 떠나보냈습니다. 그 사이 살이 3kg이나 빠졌고, 막 연애를 시작했을 때의 생기는 온데간데 사라져 얼굴에 그늘까지 져있더군요. 남자친구가 보고 싶어 죽겠답니다. 모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핸드폰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남자친구가 틀림없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에는 병사들도 주말에는 자유롭게 핸드폰을 쓸 수 있다 보니 생긴 현상이겠죠. 당사자는 죽을 맛이겠지만 저는 이 관계가 너무 귀엽고 재밌게 보이더군요. 전역할 때까지 기다릴 계획이라고 수줍게 말하는 그녀에게 저는 말을 아꼈습니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요? 전인미답인 우리 인생... 누가 뭐라고 하든 겪어야 할 일은 겪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지 않습니까?


사랑에도 나이가 있습니다. 20살의 사랑은 그래요. 사랑이 완벽해요. 군더더기 없는 완전한 감정처럼 느껴지죠. 이 감정은 너무나도 선명해요. 빈틈이 없이 가득 차 있지요. 어떤 사람은 평생을 깨닫지 못하지만 이 사랑은 사실 자아도취에 가깝습니다. 자기애적 측면이 분명히 있단 말이죠. 이때는 상대방이 꿈에나 나올 것 같은 왕자님, 공주님처럼 보이고, 나는 해피엔딩 영화의 행복한 주인공이 아니면 세드엔딩 영화의 비련의 주인공 같이 느껴집니다. 어떤 엔딩이든 나 자신이 너무 멋지고 매력적으로 느껴지기에 이 사랑은 너무나도 자극적이란 말이죠.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사실 당신은 '나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랑'은 사실 아닌 것이죠. 하지만 스스로는 이 사실을 깨닫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옆에서 말해줘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갓난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것과 똑같은 것이죠.


20살의 사랑이 어여쁜 이유는 너무 순수하기 때문이죠. 아무리 자기애적 측면이 있다고 해도 이것은 본능에 가깝기에 순수하게 느껴진단 말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랑에 '경제성'이 개입됩니다. 경제성도 또 하나의 자기애적 측면이긴 하지만 이건 더 이상 순수하지는 않죠. 굉장히 적나라해요. 어떤 의미에서 사랑은 하나의 '치장'으로 전락해버기도 하죠. 이때 개인은 쇼핑을 하듯이 합리적으로 파트너를 선택하게 됩니다. 경제성이 개입된 사랑은 더 이상의 순수함도,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주식 투자나 쇼핑이 아름답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자기애(이기성)는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것인지라 사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자연도 사실 이 자기애로 작동하는데 인간과는 달리 이 자기애가 아주 절묘하게 서로를 보완해 주거든요.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최선인 것이죠. 자석의 S극과 N극이 만나면 완벽하게 달라붙는 것처럼 자연은 참 온전해요. 하지만 인간의 자기애는 극단으로 치달은 느낌이죠. 거기에는 '상대방'이 없습니다. 자석의 S극만 있거나 N극만 있어요. 강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져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스에게 상대방은 없었죠. 


사랑이 한 단계 더 성숙하기 위해서는 '자기애'를 인식하고 더 나아가 상대방을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가장 많이 사랑하는 것이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임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면 생각과 행동에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파트너가 보고 싶은 상황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자기애를 인지하고 나면 이 상황에서 기존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머뭇거림'이 생깁니다. 보고 싶은 건 상대방을 위한 감정이 아니죠. 이건 틀림없이 나를 위한 감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봐서 충족되는 것은 나의 감정이지, 상대방의 감정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함부로 보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돼요. 흔한 내 글자에도 의미와 힘이 실리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보고 싶다는 말에 파트너가 한달음에 달려와주길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파트너에게 가게 되죠. 파트너는 이 상황에 감동하고 고마워하죠. 고마움을 느낀 파트너는 상대방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답을 하려고 하겠죠. 사랑의 선순환은 이렇게 생기는 거예요. 자기애를 인식하고, 자꾸만 상대방을 내 삶의 가운데에 초대할 때 그곳에서 진정한 사랑의 싹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A에게 해주고 싶었지만 하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좀 주책입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중학생 아이들에게도 가끔 이런 이야기가 해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릴 정도니까 말이죠. 하지만 다 때가 있는 법입니다. 때가 되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A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천천히 보고 듣고 또 느끼겠죠. 그러다가 어느 날 깨닫는 날이 올 겁니다. 그리고 저처럼 빙그레 미소 지으며 생각하겠죠. 그때의 나는 참 순수하고 귀여웠구나... 하고 말입니다.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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