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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목 Jul 27. 2024

언어가 서툰 국제부부가 살아가는 법

브라질 아내와 한국 남편

서툰 영어로 사랑을 속삭이던 연애 초가 떠오릅니다. 그마저도 장거리 연애여서 가능했지요. 번역기를 써서 텍스트를 주고받으면 그만이니 말입니다. 가끔 영상 통화를 할 때는 번역기를 쓰기 불편하니 대화보다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키득거리기 바빴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제가 영어 선생이라 어느 정도 영어가 가능하다는 것이었고, 와이프의 모국어인 포르투갈어에 많은 영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물론 발음과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이해하기에 어렵지는 않았지요.


와이프가 한국에 와서 막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는 불편함이 상당했습니다. 장거리 연애를 할 때 무수히 많은 텍스트를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불편함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겁니다. 갈등의 골이 깊을 때는 컴퓨터 앞에 함께 앉아 번역기를 켜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래도 24시간을 함께 붙어있다 보니 와이프의 영어 실력은 빠르게 좋아졌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제법 진지한 이야기도 즐겁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 다 형편없는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깊이의 대화까지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러다가 깨닫게 되었지요.


'관계에 있어 언어가 엄청나게 중요한 것은 아니구나.'


관계에 있어 언어가 본질적인 것이라면 현대사회의 높은 이혼율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관계의 핵심은 이래나 저래나 결국 '사랑'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잘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의 대한 이해와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잘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있어야 하지요.


와이프와 저는 우리 관계가 이토록 온전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다 보면 결론은 늘 하나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는 각자가 가진 기준을 가지고 서로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너는 맞고, 나는 틀리고가 아닌 것이죠. 너도 맞고, 나도 맞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준을 가지고 서로를 판단하지도 않지만 애초에 너무 비슷한 두 사람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축복인 게 맞습니다. 언어라는 건 현실을 담아내는 그릇 같은 것입니다. A가 말하는 '돈'과 B가 말하는 '돈'은 글자의 생김새만 같지 거기에 담긴 현실은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애초에 너무 비슷한 사람이다 보니 몇 개 안 되는 단어만 사용해 대화를 나누더라도 거기에 모든 현실이 다 담겨있습니다. 눈빛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의 언어 수준이 몹시 향상되었을 때의 대화는 어떨까 상상해 보면 그래도 흥미롭기는 합니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언어가 서툰 국제부부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래나 저래나 축복인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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