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필요해

by 서한나

채니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오늘은 세미나가 있어 양재에 가야 한다. 아이 맡아줄 사람 없고, 세미나를 안 가기도 뭐하니 데리고 가야 한다. 몇 번 데려간 적 있다. 해봤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날씨가 더우니 지칠까 걱정이 되긴 했다.


채니 일어나기 전에 아침 루틴 마치고 싶었다. 자다 눈을 떠서 일어나지 않은 채로 명상했다. 요즘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을 좋은 생각으로 하고 싶어서 잠이 깨려 할 때쯤 곧장 일어나지 않고 누워있는 편이다. 오늘 하루를 상상하기도 하고, 긍정 확언하기도 한다.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방으로 갔다. 포트에 물을 담았다. 포트에서 끓임 버튼 눌렀다. 포트 액정 보면서 기다렸다. 내가 좋아하는 물 온도는 45도. 미지근하게 마시기 좋다. 70도까지 끓기 때문에 보다가 그전에 꺼야 한다. 서서 기다리며 양쪽 발을 번갈아 까치 발해 본다. 운동은 하기 싫고, 움직여야 하니까. 버튼을 끄고 컵에 따라서 한잔 마셨다. 유산균 꺼내들고 입에 털어 넣었다. 씹어서 입안에 조금 머금고 있다가 삼켰다.

공부방으로 갔다. 요즘 커피 명상 책 하루 한 꼭지씩 읽는 중이다. 독서대에 오늘 읽어야 할 페이지 펼쳐서 올려져 있다. 앉자마자 바로 읽었다. 두 페이지라 짧다. 읽고 마음에 들었던 문장 초록했다. 긍정 확언 다섯 개 쓰고, 노트를 덮었다. 책상 옆 책꽂이에 요즘 읽는 책 있다. 매일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이다. 책을 꺼내들었다. 오늘 읽어야 할 부분에 인덱스 붙여뒀다. 펼쳐서 읽었다.

중간쯤 읽었을 때, 안방에서 채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못 들은척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잠꼬대한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다 대답하거나 가봤다. 확인해 보니 자면서 그러는 거였다. 진짜 깼을 때는 부르기도 하지만, 거실이나 공부방으로 오면서 부른다. 손으로 짚어가며 읽는 속도를 올렸다. 처음 읽는 책도 아니기 때문에 대략적인 내용도 알고는 있다. 밑줄을 그었다. 채니가 일어났다. 목소리가 가까워졌고, 발소리가 들렸다. 엄마 어디 있어라는 말에 책을 덮었다.

채니에게 공부방이야라고 말했다. 공부방으로 온 채니. 뭐 하냐고 해서 책 읽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채니에게로 갔다. 채니를 안았다. 같이 거실로 갔다. 어제부터 채니에게 전철을 탈 거라 말해뒀었다. 오늘 한 번 더 말했다. 채니는 요즘 전철, 버스, 택시 같은 탈것에 관심이 많다. 채니는 빨리 가자고 했다. 준비를 해야 갈 수 있다고 하고. 채니 아침을 챙겨 먹였다.


세미나 장에 가는 길. 집에서 버스를 타고 역까지 가야 한다. 택시 타는 게 낫겠다 싶어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도착시간에 맞춰 현관으로 나갔다. 차니는 현관을 나오자마자 안아달라고 했다. 나는 현관 앞에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가리키며 사장님이 기다린다고 했다. 채니는 택시를 보더니 그 앞으로 뛰어갔다. 나는 채니를 뒤따라가며 천천히 가라고 말했다. 택시를 탔다. 전철역까지 갔다. 채니는 택시 안에서 말을 그치지 않았다. 이건 뭐야. 어디 가는 거야. 왜 가는 거야 등. 평소보다 목소리도 커졌다. 양발을 수영하는 것처럼 참방 거렸다. 나는 채니에게 기사님이 운전에 방해되니 조금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채니는 이해했는지, 목소리가 낮아졌다. 소곤대며 나랑 이야기하다가 내렸다.

지하철 타고 양재까지 갔다. 가는 도중 얌전히 앉아서 가는 채니. 전광판에 가끔 뽀로로 광고 나오면 좋아하며 쳐다봤다. 끝나니 더 보고 싶다고 해서 뽀로로 유튜브에서 한 편 봤다. 환승하려고 내린 고속터미널역. 편의점 바깥 매대에 뻥튀기가 놓여있다. 채니는 보더니 먹고 싶다고 했다. 한 봉 사서 환승하러 갔다.

세미나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이랑 인사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사람이 세 배 정도 더 많았다. 오랜만에 세미나장이 북적거렸다. 나는 채니랑 세미나장 뒤쪽 한편에 자리 잡았다. 테이블 있는 자리. 가방에서 출력해간 색칠 공부장 꺼냈다. 타요 버스 캐릭터. 자기가 좋아하는 프랭크 찾아달라고 해서 그 페이지를 펼쳐줬다. 펜으로 색칠하며 시간 보냈다. 간식도 먹고. 영상도 한편 봤다. 대체로 조용히 있어주는 채니. 다행이었다.

세미나 마치고 식사했다. 날이 더워서 건물 지하 식당에서 먹었다. 급식 스타일이다. 팔천 원. 밥 퍼서 반찬 담고 있는데 사장님이 왔다. 뭐라고 말하길래 들어보니 오늘따라 손님이 많아서 메인 반찬인 고기볶음이 떨어졌다고 했다. 다시 조리하고 있고, 곧 나오니 먹다가 와서 고기반찬을 더 가져가라고 했다. 사람 생각이 모두 비슷한가 보다. 어쩐지 그 식당 몇 번 가봤는데. 오늘이 사람 가장 많았다.

식사 마치고 정리하려는데 채니가 잠들었다. 잠든 채니를 안고 지하철을 탔다. 다행히 자리가 있어 앉아서 집에 올 수 있었다. 집 근처에 와서는 같이 갔던 사장님이 태워서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편하게 왔다. 채니랑 같이 있던 덕에 배려 받았다. 사장님 손주도 채니랑 개월 수가 비슷해서 인거 같기도 하다. 가끔 가서 아이 봐주는 걸로 안다.




아침에 세미나 가려고 씻을 때 채니가 코를 쓱 닦길래 보니 콧물이었다. 이번 주 내내 방학이고, 내일부터 놀러 가기로 했는데. 콧물 때문에 불편할까 싶어 소아과에 가기로 했다. 채니랑 같이 현관을 나섰는데. 채니가 이렇게 말했다. 택시는 왜 안 와라고. 아침에 택시 탔던 기억 때문인 거 같다. 택시는 불러야 하는 거라고 말해줬다. 어떻게 불러야 하냐며 택시야 이리 와 이러면 오는 거냐 물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한참 웃었다. 택시 앱을 설명해 주면서, 채니를 안은 팔에 힘을 더 줬다. 걷는 속도도 올렸다. 안아 병 채니. 안고 가야 하니 양산 쓸 수 없고. 모자 쓰는 것도 싫어한다.

병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진료 접수하자마자 채니 차례가 됐다. 채니 이름이 불렸다. 채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서 진료실 문 앞으로 갔다. 평소에는 진료실 문이 열려있는데, 오늘은 닫혀있었다. 채니는 닫힌 문 앞에서 똑똑똑이라고 말하더니 손잡이를 잡았다. 간호사가 옆에 서있다가 문을 열어줬다. 진료실에도 뛰어들어가더니 의사에게 인사했다. 채니가 신나게 들어오는 모습을 보더니 의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왜 왔냐고 물었고, 콧물이 조금 난다 대답했다. 청진기를 차고 채니 숨소리를 들어보더니, 초기 단계여서 항생제는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진료실을 나왔다. 처방전을 받아서 약국으로 갔다.

이번 주가 채니 방학이라 친정에 가있기로 했다. 그중 하루는 남편도 휴가를 써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갈 짐을 모두 싸놨다. 남편 오면 밥 먹고 출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채니랑 놀고 있던 중에 남편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거실 월패드에서 떴다. 곧 남편이 들어오겠거니 했는데, 다시 나간다는 정보가 떴다. 뭔가 했더니 남편 차가 고장이 났다고 했다. 정비소로 갔는데 퇴근 시간이 지나서 정비는 할 수 없었다고. 차를 그 앞에 두고 왔단다. 친정은 못 갈 거 같아 엄마에게 톡을 남겨두고. 식사를 준비했다.




채니 방학이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걸 어린이집에서 한 달 전에 공지했다. 그 시기가 남편이 근무하고 있는 곳 휴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제는 아니라 그때 쓰고 싶은 사람은 쓰지만, 출근하기도 한다. 나는 채니가 방학이라는 사실을 말하면, 남편도 휴가를 쓸 줄 알았다. 오일 내내 하루 종일 내가 보기에는 나도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니까. 나는 몇 번 남편에게 물었다. 휴가 언제 쓸 거냐고. 남편은 상황 봐서 쓰겠다는 말만 했다. 그러다 이번 주가 됐다. 난 휴가를 그래도 이틀은 쓸 줄 알았는데. 언제 쓸지조차 회사에 말하지 않았었다. 이차 저차 해서 하루 쓰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밥 준비를 하다가 생각해 보니 남편이 휴가가 스무 개가 넘을 텐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몇 개 썼는지 야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소 절반 이상은 남아있을 텐데. 올해 말까지 남은 휴가 다 쓰지도 못할 건데 왜 안 쓰나 싶었다. 소시지 야채볶음을 하는데, 나도 같이 볶아지고 있었다. 머리가 뜨거워지고. 아니 그 휴가 다 어디다 쓰려나란 생각이 들 때. 남편이 집에 도착했다.


밥 먹으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남은 휴가가 몇 개인지. 남편은 열세 개쯤 남았다고 말했다. 나는 입이 삐쭉 나왔다. 그 많은 휴가 다 언제 쓰려고 그러는 거냐고. 남편은 내가 아플 수도 있고 채니가 아플 수도 있으니 남겨두는 거라고 했다. 오 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아플 일이 그렇게 많냐고 말하며. 너무 당신만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남편이 이번 휴가 때 휴가를 쓰지 않은 이유는 다른 회사들도 휴가철이라 일이 별로 없다는 것. 그리고 회사 휴가여서 회사도 직원이 없다는 것. 좀 한적하고, 여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 소리를 듣고 나는 말했다. 지만 생각하네라고. 나는 그래도 남편이 최소 이틀은 휴가를 쓸 줄 알았다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남편은 자기만 생각했다고 미안하다 했다. 말할 때 내 눈가가 좀 촉촉했나 보다. 우냐고 묻길래 이런 걸로 뭘 우냐고 했다. 괜스레 밥만 입에 욱여넣었다.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든지 말든지 채니는 밥을 자기 혼자 잘 떠먹고 있었다. 더 달라고 말하기도 하고.




속 마음을 잘 말해야 한다는 것 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 역시. 알아주길 바랐던 거 같다. 다행해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나 역시 직장 생활해 봤으니, 느슨하게 일할 수 있는 날 회사에 가는 게 좋다는 것 알고 있다. 평직원일 때, 팀장 휴가 쓰는 날 피해서 휴가 쓴 적 많다. 남편도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서로의 입장만 생각했다면, 오늘 대화는 있을 수 없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대화로 이어졌다. 이런 시간들이 쌓여 우리 부부가 단단해져가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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