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삶을 버티는 힘

by 서한나

아침에 눈뜨면 건강 루틴 한다. 따뜻한 물 한잔 먹은 뒤 유산균 먹고, 소금 먹고, 레몬오일 먹고, 올리브오일 2먹고. 쓰고 보니 좀 부끄럽네. 소금 얼마 안 남아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방으로 와서 컴퓨터를 켰다. 육 년째 먹는 소금. 구입했다. 배송비가 붙는다. 엄마도 같은 소금 먹으니까 전화했다. 같이 사자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 목소리가 시원찮다. 힘이 없는 거 같다. 왜 그런가 물었다. 밤새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오늘은 아빠 병원 검진 가는 날이다. 안 그래도 아빠 병원 모시고 가야 하는데, 몸에 힘이 없어서 걱정이란다.

아빠는 지난 이월 말경에 간암 진단을 받았다. 간에 이상이 있어서 추적 관찰을 하던 중이었다. 병원에서는 +

암이라고 바로 수술을 하자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병원을 옮기게 됐고. 옮겨간 병원에서 항암 수술을 했다. 1차 진행하고, 두 번째 경과 검사.


나는 몇 시에 출발할 건지 물었다. 엄마는 아홉시쯤 집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씻고 바로 가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괜히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무슨 소리냐면서 끊으라고 했다. 얼른 준비하고 간다고.

핸드폰 충전기 꽂아두고. 씻으러 갔다. 샤워하고 나와서 옷 입었다. 남편과 채니는 자고 있는 상황. 남편에게 엄마 집 간다고 말해두고 집을 나섰다.


엄마 집 도착해서, 현관문 열고 들어갔다. 비밀번호 알고 있으니 벨 누르지 않는다. 벨 누르면 테리(강아지)가 예민하게 굴기도 하고. 테리는 유기견이어서 그런지 벨 소리에 민감하다. 낯선 사람도 경계를 많이 하고.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아빠가 뭐 하러 불렀냐고, 얼른 전화해서 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럴 때 같이 가는 거지 뭘 그렇냐고. 그럼 엄마가 아픈데 운전하고 가면 되겠냐고 했다. 아빠는 괜히 미안해서 그런 거다. 나도 아니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했다. 엄마는 어제도 몸에 힘이 없어서 길을 가다 넘어졌다고 했다. 다리 힘이 풀려버렸다고.

식탁 위에 삶아둔 감자 한 접시. 순삭 했다. 집에서 못 챙겨 먹고 온 영양제도 먹고. 배가 고팠다. 요즘 배가 너무 자주 고프다. 내가 잘 먹으니 엄마는 좋아서 냉장고에서 뭘 더 꺼내주려고 한다. 나는 됐다고 했다. 감자로 충분하다고.

엄마는 내가 잘 먹으면 좋아한다. 나는 반찬투정도 별로 없고. 엄마가 주는 대로 잘 먹는다. 동생은 반찬 투정이 있다. 고기 위주로 먹는 걸 좋아하고. 그래서 엄마가 늘 동생 반찬 걱정이 있다. 뭐 먹여야 하나 하면서.

준비 다 한 상황이어서 출발하자고 했다. 아홉 시보다 십오분 먼저 출발이다. 차가 막힐 수도 있으니까.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게 낫지, 막혀서 늦으면 답이 없다.




길 모르니 내비게이션에서 검색하고 일러주는 대로 갔다. 엄마는 몇 번 가봤다고 길을 잘 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해 준 경로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한 마디 한다. 다른 길로 가는 게 더 좋다고. 무슨 길인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나와 나는 좌회전했는데, 우회전을 해야 한단다. 아마 내비게이션 길이 최적화된 길일 것이다. 직진 우선으로. 가라는 대로 가겠다고 했다.

올림픽대로 타고 가는 길. 차가 많이 있지만 막히지는 않는다. 규정속도대로 맞춰갈 수 있었다. 지나며 보이는 풍경 보고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 나눴다. 어제는 왜 잠을 못 잤는지, 왜 넘어졌는지, 요즘 컨디션 등등. 아빠는 뒤에 타서 아무 말 없다. 원래 말수가 적은 양반이다.


병원에 도착했다. 검사시간 보다 일찍 도착했다. 피검사 먼저 진행했다. 피검사하고 있으니,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이었다. MRI 실이었고, 어디 있는지를 확인했다. 피검사 중이라고 했더니 앞에 대기자가 없으니 피검사 마치고 MRI 실로 오면 예약시간보다 빨리 검사할 수 있다고 했다.

MRI 실로 갔다. 우리는 대기실에 같이 앉아 있었다. 일요일이라 검사하는 사람만 있다. 붐비지 않았다. 아빠 차례가 됐다. 상담실로 들어간 아빠. 밖에서도 소리가 들린다. 몇 가지 주의 사항 알려주고, 검사 설명해 줬다. 설명을 들은 아빠는 옷을 갈아 입으로 갔다. 옷을 갈아입고 기다리고 있자니, 아빠 이름이 불렸다.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물함 키를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키를 받아들었고. MRI 실 문이 열렸다. 아빠가 들어가자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우리는 그 앞에 앉아서 아빠를 기다렸다. 검사는 삼십분 정도 진행됐다. 마지막으로 X-RAY 촬영을 마치고 예정된 검사가 모두 끝났다. 결과는 다음 진료 때 알 수 있다고 했다.


검사 중간중간 엄마랑 둘이 있는 시간. 엄마는 요즘 더 살이 빠져서 사십육 킬로그램이 됐다고 했다. 아무래도 아빠 간암 진단 이후 아빠를 돌보느라 애를 많이 쓰고 있어서인 거 같다. 엄마가 걱정됐다. 아빠는 명백한(?) 환자다 보니 모두 아빠를 걱정한다. 신경 써주기도 하고. 하지만 엄마는 별달리 신경 써주지 못했다. 예전에 어떤 건강 강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당뇨 상식에 대한 주제였는데. 당뇨환자보다 당뇨 전단계 환자가 더 위험하다는 말이었다. 당뇨환자는 진단을 받으면 본인이 잘 챙기고, 주변에서도 도와주니까 잘 관리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뇨 전단계 환자는 다르다는 것. 본인이 당뇨 전단계인지도 모를 수도 있고, 병원에서도 약물로 증상을 관리해 주지 않는다는 것. 아빠보다 엄마가 더 위험한 상태일는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오히려 간암 진단 이후 얼굴이 더 좋아졌다는 말 많이 듣는다. 아픈 사람 맞냐, 항암 한 거 맞냐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관리하고 옆에서 챙겨주는 게 엄마인데 말이다. 앉아 있는 엄마의 앙상한 다리가 보인다. 예전에는 뱃살도 좀 있었던 것 같은데, 몸이 말 그대로 홀쭉하다. 흰머리도 보였다. 언제 저렇게 흰머리가 늘었나 싶고. 엄마를 좀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 들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도 역시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대로 왔다. 엄마는 긴장했던 마음이 놓였는지 옆에서 졸았다. 아빠 역시 검사로 전날부터 금식을 해서인지 피곤해 하셨다. 엄마는 아빠가 금식해서 검사 마치면 배고플 거라고 간식거리를 챙겨왔었다. 직접 간 토마토주스, 빵, 삶은 감자 등. 아빠는 엄마가 준비해 간 주전부리를 좀 먹고는 창밖을 보다가 이내 잠드셨다. 차는 막히지 않았고, 실시간 검색으로 중간중간 경로를 바꿔가며 예정보다 빨리 집에 도착했다. 아빠는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덕분에 편안하게 왔다 갔다 했다면서. 엄마도 마찬가지. 이런 이야기 들을 때 부끄럽기도 하다. 사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워낙 잘 챙겨주는 스타일이라 받은 게 많다. 아빠는 츤데레 스타일이기도 하고. 나는 열 번 받아도, 못 받은 거 생각하는데. 부모님은 한 번 받은 걸 너무 크게 생각하기도 한다.

병원에서 출발하면서 남편에게 연락해뒀다. 점심 같이 먹으려고. 우리가 엄마 집에 도착했을 때 맞춰 남편도 채니와 함께 왔다. 집에서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가고, 한숨 돌렸다. 어디서 점심 식사하면 좋을까 싶어 검색해 봤다. 아빠가 곤드레 밥 집을 가고 싶다고 해서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저번에 가족끼리 한 번 간 적 있다. 마음에 드셨나 보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도중. 채니는 식탁에 엎드리는 모습을 보였다. 왜 그런가 했더니 졸려서였나 보다. 나에게 안아달라며 팔을 뻗길래 안았다. 등을 토닥거렸더니 잠이 들었다. 그 사이 음식이 나왔다. 채니를 왼팔로 안고, 오른팔로 수저를 들어 식사했다. 남편이 식사를 마치고 나와 바꿔줬다.

식사하고 엄마 집으로 왔다. 채니가 잠들어있어서 눕혀두고, 남편과 나는 집을 나섰다. 남편이 미용하고 싶다고 해서. 근처 미용실에 갔다. 머리 자르고, 빙수 한 그릇 먹고 집으로 갔다. 나도 채니 옆에 누워 한숨 청했다. 배부르고, 운전하고 왔다 갔다 했더니 나도 피곤했나 보다. 바로 잠들었다.




내비게이션은 목적지를 설정하면 방향을 알려준다. 빠르게 갈 수 있는 길도 알려주고. 삶은 그렇지 않다.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아빠가 간암에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오늘 아침 엄마가 컨디션이 안 좋을 것이라는 것 알 수 없었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그럴 때,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가족이 삶을 버티는 힘이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매일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