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곤한 토요일 오후, 졸린 몸을 깨우기 위해서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최근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서 공원에는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북적인다.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놀이터 옆 등나무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족히 여든은 되어 보이는 어르신이 거동조차 쉽지 않은 듯한데 운동하러 나온 모양이다. 내가 앉은 의자 건너편에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수돗가를 주시한다. 수돗가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장난감을 정리하는 서른 중반 정도 되는 여성과 아이에게 갑자기 소리 지른다.
"모래 묻은 연장을 왜 여기서 씻냐?"
아이 엄마로 추정되는 여성은 당황한 듯하면서 불편한 투로 대답한다.
"어르신 여기 모래 놀이하고 씻기 위한 공간이에요"
"쯧쯧 그러니까 배수구가 막히지..."
"아. 예 예 예"
둘 사이 대화는 단절되었지만 어르신과 여성은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가며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곧이어 아이와 부모는 정리하던 것을 마무리하면서 떠날 채비를 한다. 모두가 불편한 상황이다. 어르신은 계속해서수돗가를 주시하며 다른 아이와 부모 행동을 관찰한다. 하필 그때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모래 범벅이 된 버킷을 들고 수돗가로 향한다. 물을 담아 가려고 하는데,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이고, 물 담으려고~~ 이리 줘 봐. 모래 좀 털어서 담자"
어르신이 불편하지 않게 들릴 정도로 말하며 조금 큰 동작으로 모래를 털고 물을 받아줬다. 아이가 물을 받기 시작해서 돌아와 앉았는데 어르신의 불편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쯧쯧쯧. 왜 여기서 모래를 씻는지 모르겠네. 주변에서 보고도 가만히 있으니 애들이 뭐를 배우겠어. 얘야. 거기서 물로 모래 헹구면 안 된다"
아이는 수도꼭지를 잠근 후 물이 반쯤 담긴 버킷을 들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모래 놀이하는 곳으로 돌아간다. 어르신과 부모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고 아이는 금세 웃음을 되찾아 모래놀이에 전념한다. 어르신은 십여분 정도 수돗가를 이용하는 사람들 행동을 계속 지적한다. 미묘한 신경전이 지속되고 어르신은 혼잣말로 하소연하다가 돌아간다. 어르신이 돌아가자 부모들이 모여서 구시렁거린다.
공원을 소중하게 지키고 공공질서를 확립하려는 어르신의 사명감과 도덕성이 부족한 맘충의 마찰로 볼 수도 있고 수돗가 용도를 정확하게 모르는 꼰대 짓으로 다른 사람들이 불편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언쟁까지 이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각자 바라보는 게 다르다 보니 누가 옳다고 선뜻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 다만 불편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 큰 마찰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 공원 관리자에게 물어보려다가 그냥 집에 가서 모래를 털어야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어느 사회나 단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많습니다.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상대방에게 관대하면, 자기주장보다 다른 사람 의견을 경청한다면, 내가 옳고 남이 틀린 게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는다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마찰과 갈등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