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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언서 Oct 05. 2023

가을비

 가을비는 객수(客水-쓸데없는 비)라고 한다. 

 그리고 가을비는 빗자루로도 피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가을에 내리는 비는 쓸모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양 또한 적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기후변화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비도 자주 내리고 양이 많다. 그러다 보니 농촌에서는 가을 수확을 준비하고 겨울 김장용 배추와 무를 가꾸고 있는데 생육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논이나 밭이 질퍽해서 농기계의 진입이나 작업에 어려움이 있고 채소 작물은 수분을 너무 많이 흡수하여 병해충이나 썩음병으로 풍작을 기대하기 어렵다. 

 벼농사는 막바지 가을이 중요하다.

 논농사는 1년 중 가을 날씨에 따라 풍작과 흉작이 오락가락한다. 특히 가을철에 자주 발생하는 태풍에 따라 잘못되면 1년 농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에 가을 막바지에는 농부의 근심이 이만저만 아니다. 오죽했으면 농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하늘이 내려주는 대로 따라야 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는 21세기 과학과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날씨는 사람의 힘이나 과학적 기술로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것이다.

 엊그제부터 연 이틀 비가 내렸다.

 이렇게 되면 논바닥이 물러져 농기계가 빠지면 작업 능률이 떨어지고 벼에 수분율이 높아 수확 후 건조해야 하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래저래 피해를 보는 사람은 농민이다. 그리고 채소 작물은 잎이나 줄기에 수분 함량이 많아져 상품성도 떨어지고 음식을 해도 빨리 물러지는 현상이 있어 소비자들이 구매를 꺼리게 된다. 결국에는 고생만 하고 팔지 못하는 농산물을 생산하게 된 꼴이 된 것이다. 

 그래서 발전한 농사 방법이 바로 시설하우스다.

 시설하우스 농사는 관수 시설을 갖추고 필요에 따라 수분을 공급할 수 있으며 농작물의 생육에 맞는 온도 조절 등 다양한 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면 계절과 관계없이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벼농사는 그렇지 못하다. 대단위 농지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보니 시설 농법을 하지 못하고 하늘이 내려주는 대로 자연에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 

 이제 가을비가 그쳤다.

 장기 예보를 보니 당분간 비 소식은 없어 다행이다. 가을의 따사로운 햇볕이 얼마간 유지해준다면 농사 마무리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이런 여건이라면 10월 중순부터 이른 벼를 수확하고 늦어도 11월 말까지는 가을걷이를 끝낼 수 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청명하고 따뜻한 가을 날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농부는 많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다만 땀과 노력으로 손수 가꾼 농작물이 풍성해져 먹을 것이 넘쳐나길 바랄 뿐이다. 농부가 가을에 풍년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여름내 흘린 땀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는 낭만도 농부의 걱정도 함께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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