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
오래전부터 백두산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 이유는 한반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남쪽에 있는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은 다녀왔다. 그런데 기왕이면 살아 생전에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시로 여행사를 검색하고 블로그도 찾아봐가며 정보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한반도의 육로를 통해서는 갈 수 없지만 중국을 경유해서라도 천지를 갈 수 있기에 늘 마음에 두고 몇 해를 고민했다.
여유로운 시간이 왔다.
퇴직을 하고 새로운 직장에 다니면서 그런 정도의 시간은 할애가 가능하기에 여행일정이나 여러 가지 조건이 좋은 상품을 찾아봤다. 그리고 아내도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아 의견을 물어보니 올해에는 여기저기 자주 다녔는데 백두산은 다음에 가자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떤 일을 생각하면 후다닥 해치우는 성격이라 말이 나온김에 내심 추진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먼저 아내와 한라산 백록담을 데리고 갈 계획을 세웠었다.
나는 오래전에 다녀왔지만 아내도 한라산과 백두산을 갔으면 하는 마음에 권했지만 도저히 못간다고 엄살이다. 내 생각으로는 어찌됬든 평생 한 번 이라도 한반도의 남쪽 한라산 정상 백록담과 북쪽 정상인 백두산 천지는 가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라산을 가장 저렴한 경비로 다녀오고자 계획을 세웠었다. 늦은 밤 비행기로 제주도에 들어가면 항공요금이 저렴하고 다음날 아침을 제공해주고 성판악까지 태워다 주는 여관이 있다기에 찾아봤다. 등반은 이른 새벽에 출발해서 천천히 올라가다 힘이들면 쉬고 하는 방식으로 일반인이 소요하는 시간 보다 무리하지 않고 넉넉하게 계획했었다. 내려와서는 맛난 저녁을 먹고 쉬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 출발하는 항공권이 저렴하기에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으나 아내의 의견을 수렴해 결국 실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백두산 여행은 서두르기로 했다.
이제 나이가 점점 들어가니 혹여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갈 수 없다는 생각에 하루라도 빨리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추진 중이다. 엊그제 일정을 알아보며 최종 결정하기 전에 아내에게 톡으로 의견을 물어봤다. 아내는 내가 마음먹은 일은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 아닌 것을 알고 하고 싶은 대로 하란다. 아내의 퉁명스러운 승락이지만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예약을 마쳤다. 그리고 일정을 출력해서 설명도 하고 한 번 읽어보라고 권유 했지만 아내는 좋은지 싫은지 뚜렸한 반응은 없다. 다만 내가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에 더 이상 가타부타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평소에도 무슨 일이든 계획하면 빈틈없이 빠르게 추진해서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결국 백기를 든 것이다.
그렇게 백두산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여행사 담당자와 통화가 되어 간단한 설명까지 들었다. 3일 이내에 여권하고 신분증 사본을 톡으로 보내달라고 한다. 이미 10월에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 여권이나 신분증은 준비가 되었어서 바로 보냈다. 또한 출발일 20일 전에 잔금을 입금하고 기타 자세한 준비물 등을 다시 알려준단다. 말 그대로 일사천리로 추진하고 있다. 이미 계획된 일이기에 이것저것 따질 이유가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여행기간 동안 날씨만 도와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솔직히 퇴직하고 어떤 노후를 살아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과연 내가 바라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떻게 해야 마음먹은대로 순조롭게 살 수 있을까? 모든 일은 계획도 중요하지만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퇴직하고 좋은 친구 덕분에 바로 취업에 성공을 했다. 나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급여가 헛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 그간의 다양하고 많은 경험이 있기에 무슨 일이라도 자신감도 있었다.
후련하다.
두 아이를 여의살이 시키고 퇴직도 했으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 물론 아직 사회경험이 부족하니 신혼 생활이 순탄하지는 안을 것이다. 때로는 의견충돌을 겪어가며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는 일도 인생의 배움이다. 나는 평소에도 부모의 책임이나 의무는 여의살이가 끝이라는 생각이다. 이제부터 남은 내 인생을 아내와 둘이 행복하게 살아가지 위한 조건이 바로 부자지간에 더 이상 금전적 거래나 지원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아이들에게 줄 돈도 없지만 아이들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할 일도 없어야 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도 다니며 맛난 것도 먹고 자유로운 삶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틈틈이 농사도 지어서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살면 그만이다.
물론 쓰고 남으면 모를까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화목하고 우애있는 삶을 살아가며 행복해 하는 모습 볼 수 있다면 내 삶이 더더욱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오롯이 나와 아내를 위해 열정적으로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논두렁 밭두렁을 휙 둘러 보고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35년간 몸에 익은 직장생활의 흐름을 잠시라도 흐트러지거나 깨치고 싶지 않다. 나는 항상 몸을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타고난 모양이다. 그래서 살이 찔 여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늘 가벼운 몸을 유지하고 있다.
다음 달이면 백두산 천지를 바라며 서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인생의 한 획을 긋는 다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많이 보고 느끼는 행복한 여행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