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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지원 Sep 24. 2024

60살에 다시 태어나 꿈을 그려본다

암은 나에게 온 선물


늦지 않았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꿈?  다시 그려 보는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했다.  


나에겐 입만 벌리면 평생 지적질을 일삼는 남편과  이젠 성인이 된 딸 둘 아들 하나 삼 남매가 있다. 이젠 사위도 생기고 사랑스런 손자도 생겼다


살림만 하고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시부모님을 13년간 모셨다.  아~~ 나에겐  생각조차 하기 싫은 파란만장의 세월이었다.


 쥐꼬리인지 코딱지인지 벌어다 주며 큰소리치는 남편밑에서  아이들 셋을 키우며 온갖 눈치를 보아야 했던 시절이 있다. 어릴 땐 내가 데려온 새끼들 마냥 학원하나 보낼라 치면 눈치를 보아야 하고 늘 때려치우라는 소릴 듣고 살았다.


 40이 되어 낳은 늦둥이 아들 학원비라도 보탬이 되어 볼까 하며 막둥이 중학교에 입학하던 시기에 살림만 하던 주부가  53세의 나이에 장사를 하겠다고  반찬가게를 시작했다. 장사를 해 본 적도 없고  업소용 조리 도구하나 다룰 줄 모르던 난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한다는 즐거움으로 큰판을 벌린 것이다.


남자로 태어났어야 하는 여자인 나라고 어른들이 어릴적 말했다.

난 무엇이든 시작을 하면 죽을힘을 다해 끝장을 보려 하는 성격이다.


시부모  밑에서 숨죽이고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어 살아오며 무기력하기만 했던 나,

분노조절 못하는  남편의 시도 때도 없이 돌발하는 성격, 그 안에서 가정의 평화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에 늘  나는 방패가 되어야 했다.


세상밖으로 나가 판을 벌리고 나니

내가 보인다.

용기가 솟아난다.

까이꺼 못할 것도 없지.

망하면 세상공부 하는데 돈 좀 썼다고 생각하지 뭐~


남편에겐 배 째라 하면 지가 어쩔 거야!!!

조금은 불안함도 있었지만 쫄지 말자

세상과 한판 붙어 보자.

넌 할 수 있어 나를 컨트롤해 나갔다.

이런 똥배짱 어디서 나왔는지..

죽을힘을 다해  일하고 또 일을 하다 보니 난 대박집 쥔장이 되어 있었다.


유동인구 별로 없는 상권에 반찬 가게를 해야 하기에 와서 한번 잡숴 봐요, ¹

테이블 몇 개를 놓고 런치뷔페를 열었다.

식사를 하시고 반찬을 사가시고

금방 입소문이 났다.


내가 벌려 놓은 장사판에서 칭찬받은 고래가 춤을 추듯 신나게  일중독이 되었다.

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일라치면 밤이면 우렁각시가 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일을 완성해 놓았다.


나에게 투자한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나서 지적질이다. 잘하고 있는 마누라가  무엇이 불안해서 재수 없는 말만 한단 말인가. 그런 걸 누가 먹으러 오냐, 그렇게 퍼주고 누군 장사를 못하냐? 매일 나타나서 매출을 확인한다. 타고난 부정적인 지적질 남이다. 그도 알고 보면  불안장애 분노조절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다.


여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마지막 신의 실수로 뭐 하나 달고 나와 남자가 된 사람이다.

조금 일찍 명퇴를 해야 하는 상황에

그래 때려치워라고 큰소리칠 수 있는 내가 되어있었다.

 이젠 나의 매장에서 장을 봐다 주는 식자재 담당이다. 여전히 승질머리는 종 잡을 수 없지만 나에겐 필요한  매입담당자이다.


초창기엔 몰려드는  손님이 감당이 안돼 주

말에 혼자 나와  다음날 장사 준비를 해야 했다.. 내 일터에 나를 대박집 사장으로 만들어준 매장에 있다 보면 힘이 들어도  신이 난다.


직원보다 사장이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게 옳고 반찬도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런  구조를 만들어 놓았으니 내 몸이 고달팠다. 고객들은 내 손맛을 믿고 찾아 주는것이라 믿고 모든 음식은 내 손을 거쳐야 했다.


밀려드는 손님들~

줄을 서서 내 음식을 기다린다.

 내가 차려놓은 밥상을 구내식당이다 라며 매일 식사하러 오시는 어르신들

찾아 주시는 게 감사한데 오히려  건강하고  맛있는 밥상을 차려 주었다고 감사의 말씀들을 하고 가신다.


 

너 참대단해!!

잘하고 있어!!

너 참 멋지잖아!!

나 스스로 힘든 나를 위로하고 컨트롤하며   그렇게 십여 년의 세월을  앞만 보고 달렸다.


막내가 서울대 공과에 입학하던 날  매장에서 펑펑 울던 기억이 난다. 아들 학원비 벌어 보겠다고   시작한 일이 아들은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고  엄마는 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힘든 줄도 모르고 달려왔는데 드디어 해냈구나!!!






아픔은 소리 없이 찾아온다.

.

막내아들이 군대 가는 날 

잠도 안 오고 뒤척이다  우연히 가슴을 만졌는데   딱딱한 무언가 만져진다.

뭐지 이건? 온몸이 뜨거워지듯 불길함이 엄습했다. 아무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논산훈련소에 데려다주면서 혼이 나간 듯 아들 손만 만지작만지작거렸다. 아들 군대 보내는 엄마의 심정과 또 한구석에 닥쳐올 불길함은 어두운 내 얼굴의 그림자를  보는 누구도  눈치를 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이 놈이 그 고약한 놈이라면 가게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찔함이 다가온다. 다음날 실장님에게만 귀띔을 했다. 가족이나 딸들이 알면 난리가 날 판이니 일단 가게 수습을 해야 했다


음식을 늘 내 손으로만 해야 했고 레시피도 일부만 정리되어 있는 싱황이다.  당장은 내가 아픈 상황은 아니니 음식 하나하나 영상을 찍고 레시피를 기록해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수습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레시피 정리가 거의 되어 갈 즈음 큰딸에게 딱 걸려 병원에 끌려갔다. 동네 의원에 가서 조직 검사 하니  유방암이란다. 왜 이제 왔어요. 사이즈가 좀 큰 거 같아요. 조직검사를 하며 건드려 놓은 가슴은 통증도 오고 오십 원 크기 만하던  암덩이는 500원 크기처럼 느껴졌다. 이제 난 암환자가 되었다.



대학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하고 호르몬양성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다.  나는 전이만 안되길 바랐다. 암크기 2.5센티

다른 곳에 전이는 없단다. 이런 감사할 데가 어딨 나~담당선생님께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나왔다.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던 딸이 눈물을 쏟아 낸다. 딸이 웃으며 나오는 엄마가 제정신이냐고 한다. 고맙다는 말이 나오냐고~~


암이지만 2기이고 전이 안 됐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말이다.  걱정하는 친구들에게도 가족들에게 신나게 전화를 한다. 2기래 전이 안 됐대. 암진단받고 이렇게 신나고  감사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중에 친구들 말이 암인데 자기들처럼 신난 사람들 첨 봤다고 한다.


수술전날까지 매장에서 일을 했다.

일을 하면서 오디오북으로 시크릿 책 등 긍정적인 컨트롤 할 수 있는 책들을 계속 들었다. 두려울 건 하나도 없다.

난 이겨 낼 수 있으니까.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단다. 매장은  실장님과 작은딸이 맡아서 하기로 했다.

반찬 매장은 설명절과 정월대보름이 대목이다. 오래 동안 함께 근무한 실장님과 딸은 우리 음식맛을 너무 잘 기억하고 레시피대로 잘 만든다. 하지만 큰 행사는 나 없이는 해결이 안 된다.  매출은 둘째 치고라고 일 년을 기다리는 고객님들을 허탕 치게 할 수는 없는 게 나의 자존심이다.


병원에선 최대한 빠른 수술일정을 잡아주었다. 설날 일주일 뒤 수술 날짜가 잡혔다. 설장사는 마쳤는데  정월대보름 장사해야 한다고 하면 미쳤다고 할판이고 사정상 날짜를 미뤄 달라고  했다.   일주일 뒤로 미루고 나니 정월 대보름 다음날로 일정이 잡혔다. 더 늦출 수는 없을듯했다. 딸들이 미쳤단다.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는 게 맞느냐고?


그렇게 나는 정월 대보름 나물과 오곡밥 준비를 해주고 나 없이도 장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고 병원으로 향한다. 난 이순신 장군이 되어 내 죽음  손님들께 알리지 마라~~ 웃음으로  2022년 2.16일 유방암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환자인지 나들이 나온 사람인지 모르게 호텔방에서 휴식하듯 1인실 배정받아 감사한 마음으로 이틀을 보냈다.

8번의 항암치료와 24번의 방사선 치료를 잘 마치고 이제 2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암은 떼어 냈고 내가 그놈을 싸워서 이겨내면 된다 생각했다.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이겨내겠다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


2022년 1월 1일 미라클  모닝을 시작하면서  암진단을 받은 것이다

 책을 읽고 디지털 공부를 하고  인스타 블로그를 하면서  세상밖으로 나왔다.  난 이미 암환자가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환갑의 나이면 할머니 취급을 받아야 한다. 난 할머니지만 이대로 눌러앉아 할머니로 살기는 싫은 거다.


63세의 나이에  하얀 도화지에 꿈과 목표를 그려나간다. 당장 내일 내가 어찌 된다 해도 하고 싶은 다 건 해보고  도전해 보는 중이다.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난 그저 그런 할머니로 살다가 떠나지 않았을까 싶다.

60에 다시 태어난 나이기에

공부도 업고  취미도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기로 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깥세상으로 나오면 눈이 휘둥그레지겠지만 그렇게 세상 속으로  스며들어 가면 되는 거다. 53살의 나이에 우물 밖이 두려워 웅크리고 있었다면  자금의 난 무엇을 하고 있을까?

60에 다시 또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나

나에게  응원을 보낸다.






암이 나에게 준 선물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다시 태어난 나는 내 꿈조차 있는지도 몰랐던 나에게 꿈을 선물한다.

 아직 늦지 않았어.

내가 하고 싶은 거

내가 꿈꾸고 싶은 거 하얀 도화지에

다시 그려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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