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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Nov 02. 2022

노란 장미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친한 남자 동생은 사서인데, 출근길에 자주 꽃을 산다. 생긴 건 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놈인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꽃을 잘도 사서 화병에 꽂아 데스크에 놓아둔다. 그리고 내게 사진을 보내며 오늘은 이 꽃을 샀어. 이름은 뭐래, 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런 꽃도 있어? 예쁘네, 하고 또 금방 잊는다.


엄마는 길가를 걷다 자주 멈춘다. 이 꽃은 뭘까. 저 꽃은 이름이 뭔데, 하며 관심 없는 얼굴의 내게 계속 말한다. 네가 자주 마시는 그 메리골드 차가 저 꽃이야, 하고 말한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잠시 꽃을 바라본다.


친한 언니는 손가락에 라일락 타투를 하고 싶어 했다.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꽃이라며.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꽃을 잘 모른다. 나 역시 어려운 꽃 이름을 대며 제가 좋아하는 꽃이에요. 하고 있어 보이게 말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아는 꽃은 주로 남들도 아는 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좋아하는 꽃이 무엇이냐 물으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대답은 같다. 노란 장미요.


노란 장미의 꽃말이 이별인 것을 안다. 꽃이 예쁜 거랑 꽃말이 무슨 상관이람. 하지만 사람들은 꽃말을 신경 쓰는 듯했다. 내가 노란 장미를 좋아했기에, 그 당시 연인들은 내게 꽃 선물을 잘하지 않았다. 왜 하필 좋아하는 꽃이 그거야, 나는 못줘, 하며 애교 섞인 말들을 내게 뱉었다. 그래서 꽃이 내 손에 들려있는 일이 자주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꼭 노란 장미가 아니라도 지가 좋아하는 꽃 주면 되는 거 아니었나 싶다. 그냥 나의 헤어진 연인들은 내게 꽃을 주기 싫었나 보다. 멍텅구리들.


그럼에도 노란 장미를 자주 손에 들려주던 사람이 있었다. 나의 행복한 날마다, 내가 위로가 필요한 날마다, 축하할 일이 생기는 날마다, 이별의 꽃을 선물하는 사람. 마음에 내키진 않지만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라고 하며. 아마 유일하게 내가 꽃을 들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많이 본 사람일 것이다.  


여전히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좋은 날에, 누군가의 아픈 날에 꽃 선물을 하려 꽃집을 서성인다.  '자주 가지 않는 꽃집에서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꽃을 고른다는 행위'가 그 꽃 선물에 의미를 더 크게 만든 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래서 묻고 싶다. 무슨 꽃을 좋아하는지. 그 꽃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있는지. 나처럼 좋지 않은 의미가 담겨있어도 나는 그 꽃을 선물해주고 싶다고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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