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하나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같은 은행에서 근무하는 네 사람이 직장 동료로서, 연인으로서 관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현실 로맨스다. 그중에서도 하상수와 안수영이 메인.
뼈 아픈 가정사와 고졸을 향한 편견으로 입은 상처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하는 안수영, 삶의 크고 작은 힘듦을 티내지 않고 혼자 견뎌온 탓에 신중함을 넘어 우유부단해지는 하상수. 순간의 망설임으로 맺어지기도 전에 끊어져 버린 두 사람의 관계는 어딘가 이상하다. 상수는 끈질기게 수영에게 그날의 일을 해명하지만 수영은 그 망설임이 마음에 걸려 매몰찬 말로 그를 거절한다. 그에게 마음이 있으면서도 거짓말까지 해 가며 매섭게 밀어내는 수영이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겠다. 애정관계의 단순한 '밀고 당기기'식의 애정싸움이라고 보면 곤란하고,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방어기제라고 보면 적당할까.
고졸 텔러. 부모님은 낡은 굴국밥집 주인.넉넉한 배경과 평범한 가정,학력을 갖추지 못한 수영은 상수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하며 다시 거절의 뜻을 표한다. 괄목할 성과에도 불구하고 고졸이라는 시작 문턱부터 걸려 몇 년째 주임에 머무르는 서비스직군의 수영, 수영의 후임이었지만 어엿한 계장이 되어 은행 내에서 입지를 잡아가는 일반직군의 상수. 두 사람은 신데렐라와 왕자님의 간극처럼 멀리 있는 삶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덜 노골적이고 교묘한 방식으로 '계급차'에 따른 차별 대우를 받는다. 서비스직은 텔러 일'이나' 하면 되는 것이고, 악착같이 성과를 내어 직군전환을 노린다든가 일반 직군의 영역을 넘보면 안 된다는 듯 은근한 우월 의식을 내비치는 데 거리낌이 없는 행원들의 세계에서, 직장생활 이전의 연애도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 있는 업계에서 사랑만으로 사랑하기가 과연 쉬울까? 보이는 것처럼 딱 한 급간의 차이가 아닌 차이에 눈을 감고 뛰어들기엔 기력도 순진함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속된 말로 '급이 맞는' 사람들끼리 만났다고 생각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는 거. 같은 명문대 출신. 같은 동아리. 같은 직장. 딱 한 계단 위의 상사. 상수와 미경은 비슷한 삶을 공유할 것 같지만, 접대를 하는 입장과 받는 입장에 선 두 집안의 대비(미경의 아버지를 근무 지점의 주요 고객으로 접대하는 상수와, 미경의 어머니를 단골 고객으로 모시는 에스테틱 샵 원장인 상수 어머니)로부터 그 환경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서로 비슷한 그늘을 가진 듯 보이는 수영과 종현은 그 삶의 방식을 어려움 없이 이해하고 서로를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응원하려고 한다. 하지만 종현은 집안의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며 꿈을 좇기엔 너무나 악화된 상황으로 연애도 꿈도 놓고 생계를 위해 일하려고 한다. 단적으로 수영보다 '조금 더 불행한' 처지에 놓여 있어 제일 먼저 사랑을 포기하려는 종현의 모습에서 상수를 대하는 자신을 보았는지, 수영은 쉽게 놓지 말고 끝까지 붙잡아 보기라도 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힘듦을 나눠 갖게 되는 수영과 종현. 그것이 마냥 희망차 보이지만은 않는다.
각자 애인을 두고 서로를 향하는 감정을 묻어두려는 상수와 수영이다. 쳐다보지 않고 만나지 않으려 애쓰지만, 고객 조문 과정에서 단둘이 대화할 시간을 갖게 된다. 둘은 현실 때문에 놓아야 했던 꿈이 있고, 그 로망을 취미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알아갈수록 다시 커져가는 마음은 주체할 수 없다. 결국엔 안수영, 결국엔 하상수에게 끌린다. 다른 사람 곁에 서서 서로를 엿보던 이상한 관계가 비틀어진다.
애당초 이들의 사랑은 불완전하지만, 진짜 끌림을 외면하고 현실을 택했다고 믿었던 선택에서 또 다른 불일치를 마주한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세상에서 사랑만이 고귀하고 순수할 수 없고, 신성불가침이 될 수 없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내 굴곡진 삶과 상황을 잊게 해 주는 무엇. 원하면 원한다고 드러내지 못하는 내 결핍을 극복하게 해 주는 어떤 것. 감히 값을 매길 수 없이 귀중해서가 아니라, 지극히 이해타산적인 관점에서, 호혜성을 지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그것. 사랑. 인간사를 관통해 온 그 불가해한 개념은 어쩌면 이처럼 이해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