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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빈 Jun 04. 2023

여유와 설빈 3집 작업 기록 - 봄

지난 이야기

3집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겨울에는 보컬과 기타 위주로 녹음했고, 날이 풀리면서부터 곡에 다른 악기나 소리를 입혀보고 있다. 편곡에 오래 신경을 쓰다가 얼마 전에 믹싱에 돌입했다. 겨울에는 스튜디오 옆의 밭이 황량했는데 어느새 꽃이 가득 폈다.


집에서 많은 일들이 이루어진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던 걸 옮겨와 들으며 여러 소리를 더해보았다. 간단히 완성되는 노래가 있고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는 노래가 있다. 어떤 곡은 좀 더 리드미컬했으면 하는데 드럼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서 책상이며 화분이며 집에 있는 물건을 다 두드려보았다. 그나마 창호지 바른 나무 창살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가장 그럴싸했다. 장구도 아닌 것이 젬베도 아닌 것이 마냥 가볍지 않게 퉁퉁대는 소리가 난다.


여유는 집에서 추가 녹음과 편곡을 하느라 한동안 분주했다. 나는 직장을 다녀 퇴근하면 그만이지만 그는 출퇴근 개념이 없다. 아침에 깨어나 작업 생각이 시작되면 출근이고 다시 잠에 들어야 퇴근인 셈인데, 작업 생각이 끊이질 않아서 퇴근도 쉽지 않다. 요즘은 꿈에서도 작업하고 있을지 모른다.


세션 녹음을 시작했다. 베이스 녹음을 노선택님과 함께 했다. 그는 베테랑 베이시스트이자 제주 구좌읍에 동복분식이라는 식당의 사장이다. 이름은 동복분식인데 분식 메뉴가 없다. 노선택님과는 2집 때도 같이 했었는데 예전 작업이 만족스러웠어서 이번에도 부탁을 드렸다. 노래를 들으며 어떤 식으로 베이스가 들어가면 좋을지, 음반의 전체적인 톤을 어떻게 잡을지 얘기를 나누었다. 같이 작업하는 사람이 얼마나 노련한지는 얘기하다 보면 절로 알게 된다.


그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집 근처 해변길을 달린다고 했다. 하루 운동량이 상당해 보였다. 여유가 운동을 안 한다고 말했는데 여유에게 고운 말투로 일찍 죽고 싶냐고 했다. 코어힘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짧은 강습을 해줬다. 테스토스테론이 인간이라면 이런 모습일 것 같다.


여유는 매주 스튜디오를 오가며 경덕과 작업하고 있다. 둘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장난도 늘어간다. 요즘 둘의 재미는 곡 제목을 두 글자로 줄여 말하는 거다. 예를 들면 숨바꼭질이라는 노래는 숨꼭이라고 하고, 너른 들판이라는 노래는 너들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빠른 소통을 위해 줄여부르나 했는데 메아리라는 노래를 메리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고 딱히 효율만을 위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스튜디오에서도 세션 녹음을 했다. 첼로 연주로 마틴이 도와주었다.


하루는 셋이 작업하고 있는데 들국화 최성원 선생님이 우리 노래를 들으러 스튜디오에 와주셨다. 선생님은 우리 노래를 듣고 극찬에 가까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후배 아끼는 마음에서 좋게 말씀해주셨으리라 생각하지만 몇몇 피드백은 아무에게나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아 큰 힘이 되었다. 사이먼 앤 가펑클, 핑크 플로이드 등 레퍼런스가 될만한 노래를 알려주셔서 다같이 듣는 시간을 가졌다. 곡 하나 하나 어떻게 의도하는지를 바로 읽어주시니 이해받은 느낌에 기뻤다.

그동안 선생님께 실례될까봐 사진 찍고 싶다고 얘기하기 어려웠는데 이번엔 용기 내서 말씀드렸다.


중학생 때부터 친구인 유진이 제주에 잠깐 내려왔다. 유진은 사진을 업으로 하고 있고 곧 부산에 스튜디오를 차린다. 중학생 때부터 사진 찍기가 취미였는데, 단순 취미라기에는 클라우드에 용량이 모자랄 만큼 사진을 무지막지하게 찍었고 손에 항상 카메라를 쥐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깻잎머리도 봤고 온갖 유치한 모습도 알고 있다. 내게는 몇 없는 소중한 친구인데, 잠깐 내려온 틈을 타 흔쾌히 여유와 설빈을 찍어주었다.


유진이 찍어준 여유와 설빈.


봄의 어느 날에 유통사와 미팅을 해 앨범 발매일을 정했다. 여유와 설빈, 경덕은 각자 맡은 일을 하며 때로는 미소로 때로는 근심으로 흐르고 있다. 최선을 찾아가는 이 지난한 여정이 언젠가 끝날 것이기에 지금에 더 몰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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