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참다 참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했다. 매일 땡볕에 물을 주다 보니 덥기도 하고 아이들과의 상담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 주기 방식이 물뿌리개→물분사기→ 스프링클러로 진화했다. 아침에 수도를 틀어 오전 내내 물을 주니 작물들이 눈에 띄게 자란다.
동아리 인원을 정리했다. 동아리원이 아니었지만 텃밭 가꾸기에 재미를 붙인 매일 알바들은 정식 풀씨가 되었다. 자율동아리 구성 기간이 끝나 생활기록부 기재는 어렵지만 앞으로의 풀씨 활동에 함께하게 될 것이다. 동아리원이지만 참여가 어렵거나 흥미를 잃은 아이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언젠가 돌아오더라도 지금은 과감히 동아리를 떠나도록 했다. 텃밭 가꾸기 활동으로 재미와 보람을 느껴야지 힘든 인상만 있다면 좋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아이들은 텃밭에 우수수 자라나는 잡초들을 뽑는다. 누군가 잡초를 뽑다가 허리가 아프다며 방석을 사달라고 해서 농자재에 가 방석을 사 왔다. 한 아이가 어떻게 방석을 쓰는지 직접 시범을 보이며 소개했다. 작물들에 벌레들이 조금씩 꼬이는데 병충해에 대비하는 방법들도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막걸리를 사야 된다는 둥 EM을 써야 된다는 둥. 밭일에 지혜가 모이고 있다.
빗물받이용 고무대야도 샀다. 갈색 고무대야가 밋밋해서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꾸미기를 했다. 수도는 쓰지 않을 때 매번 잠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야에 빗물이 모이면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아이들 얼굴이 나오는 사진은 안 올리려고 했는데 둘이 너무 귀여워서..
*두 아이에게 자료 게시를 동의받았습니다.
아이들은 각각 탐구실천 주제를 정하고 학기말에 있을 동아리 발표회를 준비하고 있다. 작물 성장기록을 작성하는 아이는 우리가 키우는 작물들의 특징과 효능, 키우면서 주의해야 할 점, 요리법 같은 것들을 조사한다. 곤충 탐구에 흥미가 있는 아이는 텃밭에서 관찰할 수 있는 해충과 익충을 구분하고 소개하기로 했다. 생태연못과 꽃밭을 만드는 아이는 텃밭에서 자기 영역을 가꾸어나가는 중이다.
작물 성장기록은 친한 디자이너인 이 선생님의 도움을 얻기로 했다. 성장기록의 표지는 꼴라주 방식을 쓰기로 했다. 자유롭게 패턴을 그린 후 가위로 오리고 조합하여 작물을 완성한다. 아이들이 작물을 이해하는 방식이 드러나게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교생선생님 세 분이 4주간의 실습을 마치는 날에 다 같이 파티를 했다. 무슨 노래를 부르는 게 좋을까 얘기하다가 역시 생일 축하 노래가 좋겠지 하며 불렀다. 예비 교사로 다시 태어나신 것에 축하하며... 포크를 들고 케이크 먹을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예뻐서 많이 웃었다.
날이 뜨거워지니 텃밭 한편에 나무그늘이 드리우는 벤치가 귀한 자리가 되었다. 열심히 풀 뽑다가 쉬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수다도 떨고, 상담과 명상도 한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충분히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지친 일상 속에서도 숨 쉴 공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