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8월 9일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유토피아>에 대한 잡다한 썰입니다. 공 들여 평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많아서 편하게 수다 떠는 방식으로 작성했습니다. 가능하면 영화를 보고 실망하신 분들에게 더 편한 글일 것 같아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재밌게 보신 분들은 여기서 돌아가시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최근 3년간 본 국내영화 중 가장 주변의 평이 엇갈리는 작품입니다. 모 언론사의 후배 기자를 비롯해 제 동생과 몇몇 지인들은 꽤 즐겁게 감상했다고 하더라고요. 그중에는 N차 관람을 계획 중인 분도 있고요.
저와 함께 영화를 본 지인의 평가는 가까스로 '졸작'을 면했다는 정도입니다. 저도 그렇고요. 지인의 마음까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제가 그렇게 느낀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썰을 풀어볼게요.
우선, 어디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감상해야 하는지, 관람 내내 머릿속 나침반이 쉬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실제 영화 소개란에 적힌 장르도 <포스트 아포칼립스>, <재난>, <드라마>, <액션>, <스릴러>, <누아르>, <블랙 코미디>, <군상극>, <디스토피아> 등 많기도 많더라고요. 물론, 이런 요소들이 모두 포함됐다는 이유만으로 영화가 정신없게 느껴졌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영화를 제작할 때 연출자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한 예로 영탁(이병헌)이 매우 진부하게 노래 '아파트'를 부르는 민망한 신(scene)에서도 영탁의 과거를 보여준 뒤에 '매우 대단한 변곡점'인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영탁의 굳은 표정이 부각되는데요. (제 지인은 흡사 영화 조커가 생각날 정도라고 하더군요) 제 생각에 이런 연출은 적어도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선결했어야 자연스럽습니다.
하나는 이 영화의 핵심이 처음부터 끝까지 명화(박보영)와 영탁(이병헌)의 목숨을 건 '눈치 싸움'일 때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랬다면 영탁(이병헌)의 과거가 '엄청난 반전'처럼 느껴졌겠지요. 그 시점부터 영화가 본격 '스릴러'로 진입한다고 봐도 됩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전 이 영화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뼈대가 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는 100보 양보해 '그런 스릴러'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영탁(이병헌)이 수상한 인물이라는 점을 영화 초반부터 쉬지 않고 드러내지 않았을 때 조금이나마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미 관객이 영탁(이병헌)에 대해 충분히 수상함을 감지할 수 있도록 계속 시그널을 보냅니다. 힘들게 자신의 집으로 귀환한 여고생이 옆집 주민이라는 영탁(이병헌)을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은 확실히 도장을 찍는 수준이고요.
제 눈에는 욕심을 많이 부린 영화입니다. 결국 작년 여름에 작심하고 비평했던 영화 <비상선언>과도 맥이 닿아 있는 부분인데요. 공교롭게도 콘크리트유토피아도 이병헌 배우가 주연을 맡았네요. (매번 '내부자들'이나 '달콤한 인생'같은 작품을 찍을 수는 없겠지만, 이건 좀...) 왜 이병헌 배우가 2년 연속 '재난 상황에서 예상되는 집단이기주의'를 다룬 영화에 출연했는지, 이 정도면 취향이 거기에 꽂혀있는 건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작년에 쓴 비상선언에 대한 감상평은 아래 링크를 확인하시면 됩니다.
여름 성수기에 개봉하는 텐트폴 영화는 몇몇 공식에 충실할 수밖에 없나 봐요.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저 역시 내년 여름에 또 영화관을 찾겠지만요.
두 번째로 언급할 부분은 성경을 모티브로 한 연출입니다. 원작 웹툰(유쾌한 왕따)을 보지 않아서 둘 다 그런 건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영화는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영화에서 기독교적 메시지를 담았다면, 적어도 그 메시지가 시나리오의 뼈대가 되는 것처럼 보여야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보여야'입니다. '실제로 뼈대가 돼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콘크리트유토피아에서는 저런 연출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꼭 필요했는지 의문입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단순히 '모티브'로만 이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저는 지금 너무 목이 말라서 빨리 물을 마셔야 하는데, 물이 담긴 컵의 가격과 품질, 역사를 설명하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할까요)
세 번째로 영화 속 인물들이 지나치게 극단적입니다. 저런 재난 상황에서는 누구나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오히려 위급한 상황에서 더 침착해지는 성격을 지닌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영화적 연출이라지만, 콘크리트유토피아 속 인물들은 모두 강철 같은 신념을 지닌 분들입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아요. 공무원인 민성(박서준)이 매뉴얼에 따라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과 간호사인 명화(박보영)가 무조건 타인을 살리려고 하는 데 집중하는 설정은 다소 이해가 됩니다만, 그것 조차도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공무원이더라도 '자유로운 영혼'이 있고, 간호사라고 할지라도 '저런 상황'에서는 이타적인 생각보다 자신의 생존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사구체신염으로 군복무를 면제받았다는 1004호 주민(남진복)이 결국 '안타까운 결정'을 내렸을 때도 딱히 슬픈 감정이 생기지 않아 영화를 보는 내내 찝찝했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분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사실 황궁아파트 주민이든, 외부인이든,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조금씩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저 정도의 상황까지 흘러가진 않았을 겁니다.
1004호 주민은 자신의 집에 숨겨줬던 외부인들이 쫓겨났다는 이유만으로 '안타까운 결정'을 하는데요. 왜 이렇게 극단적인 겁니까? 이 영화에서 비교적 '온건한' 성향과 가치관을 지닌 분은 찾기 힘들어요. 명화(박보영) 역시 사실상 '정적'인 영탁(이병헌)을 제거하기 위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함부로 대하고, 그렇지 않아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여고생을 이용하고, 종국엔 본인만 살아남는 인물입니다. 왜 이런 방식으로 연출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황궁아파트가 '멸망'? 한 배경에는 명화(박보영)의 지분도 적지 않습니다. (사실상 저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최근 기사를 보면 콘크리트유토피아가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됐더군요. 서구권에서는 한국을 '천박한 자본주의'를 토대로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개인의 행복'보다 '국가'가 우선시되는 '지옥'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일부 있지요. 국내 언론 또한 천정부지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그로 인해 결혼을 포기하는 청년들의 애환을 다루는 기사를 매년, 매달 쏟아내고요. 그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콘크리트유토피아가 (서구권에는) 꽤 중요한 (한국의)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로 비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왜 제 눈에는 이 영화가 애초에 그런 부분을 강조하려고 연출에서 무리수를 남발한 작품으로 보일까요. 재밌게 감상했다는 지인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봐도 대부분 '한국의 사회 문제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는 평이 많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한 줄 소감 : 비상선언2
"올여름은 제대로 한 번 가보자고. 그렇지 않아도 LH사태 때부터 부동산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젊은 애들 공정이니 상식이니 지금 불만들 많잖아. 그.. 저 뭐야. 그래 '갑질 논란', 그런 뉘앙스도 풍겨야 돼. 사회적으로 이슈 되는 건 아끼지 말고 몽땅 팍팍 집어넣어. 정신없어도 돼. 다 다뤄야 돼. 한국 사람들 그런 거 엄청 좋아하거든. 보자... 오!~ 캐스팅도 이 정도면 대박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