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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용 Aug 03. 2022

내년 여름도 '또 다른' 비상선언을 보게 될까

여름 성수기마다 극장가를 찾아오는 양산형 'K-블록버스터'...슬프다

일단, 영화 '비상선언'을 즐겁게 감상하신 분들에게는 이 글을 추천하지 않는다. 비상선언 감상 후기를 계기로 한국 영화계의 '고질병(개인적 시각)'을 비판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항상 강조하지만, 영화에 대한 만족감은 개인차가 있다. 이를 적용하면 오히려 필자 같은 관객은 시간과 비용에서 손해를 본 셈이다. 반대로 즐겁게 관람한 분들은 값진 감동을 얻었으니, 충분히 '좋은 영화'로 기억에 남길 수 있다. 그러니 그 여운을 고이 간직하시고 이 글은 이쯤에서 지나쳐 주셨으면 한다.


영화 초반부터 의아한 부분이 계속 눈에 띄어 지적을 하자면 끝이 없다. 함께 관람한 지인에게 우스갯소리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농담했을 정도다. 그래도 열연을 펼친 수많은 명배우들과 감독, 스태프(staff)의 노고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최소한 자질구레한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덧붙여 딱히, 평을 할 마음도 크지 않았던 작품이지만, 개인적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 작성하는지라 '비상선언'에만 국한된 긴 이야기는 지양할 생각이다.


(영화 해운대, 부산행 등이 떠오르는) 비상선언은 닮아 있다. 매년 여름마다 극장가를 찾아오는 '한국 대작 영화'들과 전반적 흐름에서 궤를 같이 한다는 시각이다. 어울리지 않는 신(scene)에서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필요 이상의 웅장한 배경음악, 단독 주연으로도 영화 한 편을 끌고 갈 수 있을 정도의 연기력과 인지도를 확보한 명배우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엄청난 섭외력(거대 자본), 개연성과 이야기의 흐름보다 (감정적) 사건 자체에 더욱 집중하는 시나리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K-신파'까지.. 이 정도면 소재와 배우, 감독만 다를 뿐 비슷한 공식을 매년 답습하는 수준이다.


특히, 명배우들을 한 자리에 모아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까지는 좋지만, 이럴 경우 이들 각자가 지닌 무게감만큼 분량을 적절히 배분하면서 연출자가 본래 구상했던 시나리오 원안의 흐름까지 지켜내기는 쉽지 않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이것저것 집어넣다가 물과 재료의 정량 조절까지 실패하니 결국 라면수프로 마무리해 미각을 속였던 찌개가 떠오른다)

한 예로, 극 중 국토교통부 장관(김숙희)은 과연 배우 전도연이 꼭 필요한 배역이었을까. 이미 지금의 시나리오에서는 어떤 조율을 거쳐도 '수작'으로 평가하기 어렵겠지만, 최소한 비중이 큰 배역을 송강호(베테랑 형사 역할)와 임시완(전직 제약회사 직원 역할) 정도로 좁혔다면 영화에 집중하기가 조금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런 영화'는 다른 때보다 감독의 의도가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환경에서 제작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왜 한국 영화계는 여름 성수기마다 비슷한 대작을 내놓는 것일까. 우선 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배급들이 모기업을 통해 영화관 사업에도 발을 걸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들 기업이 제작에 손을 댄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자사 영화관에서는 다수의 상영관(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다. 감독과 배우들로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거절하기 힘든 조건이다.


그간 전례를 살펴보면 배급사들 '윈윈(win-win)'기류도 읽힌다. A사와 관련된 영화가 B사와 C사에서도 충분히 상영관을 확보한다. B사와 C사 입장에선 자신들이 제작에 참여할 '다음 작품'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또, 타사의 영화라도 흥행이 보장된 대작은 다수의 상영관을 내어주는 것이 수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여름철 시원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소위 '돈을 내고 시간을 투자할' 수준으로 인식되는 대작에 몰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쉽게 말해 일단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장르의 영화라면 '혹시 재미가 없을지라도 스케일은 영화관에서 볼만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듯하다. 비슷한 수준의 작품(대작)이라도 여름 성수기일 때 평가가 다소 관대 해지는 경향도 있는 듯 하지만, 이는 지극히 개인적 시각이다.

다시 비상선언 후기로 돌아와 딱 한 가지, 이 작품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한국 최초 항공 재난 영화'라는 소재의 신선 함이다. 기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대부분 러닝타임을 차지하는 영화들과 달리,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은 인물들의 '지상 고군분투'를 함께 담은 점도 그만큼 '고립감'을 감소시켰으나, 쁜 시도로 볼 수는 없다. 결국 '흐름과 조화'의 문제인데, 앞서 언급했다시피 오롯이 감독만 탓할 수 없는 '여름 성수기 한국 대작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계를 싸잡아 비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물론, 이런 비평 수백, 수천 건 작성돼도 내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또 다른' 비상선언이 봉하겠지만..


한 줄 소감 : 매년 여름 양산형 'K-블록버스터'의 기시감...언제쯤 끝날까


"예전 여름에 그 뭐지? 누구누구 나왔던 영화 있잖아. 그거랑 비슷하게 가면 돼. 이쯤에는 당연히 이런 장면을, 여기는 비장한 음악 넣어주고, 감동적인 마무리도 잊지 마.  배우는 누구에 누구까지 섭외하면 기본 천만은 거뜬할 것 같은데?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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