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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용 Jan 15. 2023

일드를 보다가 일본의 고질병을 생각하다

그래도 살아간다

일본에 대해 관심이 적은 사람일지라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극도로 꺼리는 그들만의 정서를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메이와쿠'라는 문화다.


매우 사소한 행동까지 매뉴얼화된 일본인들에게는 질서를 중시하는 '와'라는 문화도 있다. 종합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질서를 지키지 않거나, 매뉴얼을 어기는 행위를 극도로 조심하는 것인데, 그로 인한 피해 범위가 '개인'에 그치지 않고, '모두'에게 미친다는 두려움에 기반했을 것이다. 먼 과거로 시계를 돌리면 가족 구성원 한 명 때문에 마을에서 가족 전체가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이 글에서는 역사와 관련된 내용은 분량(스압)을 고려해 다루지 않는다.


'그래도 딱히 나쁠 건 없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저런' 문화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일본의 고질병이 됐다는 시각이다. 물론 적당한 수준에서는 긍정적 측면이 전혀 없지 않겠지만, 문제는 '주객전도'다. 그들이 만든 질서와 규범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단단해지고 정교해져 그들을 집어삼켰다. 도가 지나친 종속이다.


'그래도 살아간다'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친구에게 여동생을 살해당한 피해자의 오빠와 가해자의 여동생, 이러한 엄청난 비극을 짊어진 남녀 영혼의 만남을 축으로 시간이 멈춰 있던 두 가족이 내일의 희망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낸 감동의 휴먼 드라마'... 그럴 듯 하지만, 정작 사카모토 유지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그 속에서도 희망'이 아니라, '그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고질병'이 아닌가 싶다.


극 중 '가해자의 가족'은 사건 발생 직후 연일 매스컴을 장식한다. 가해자의 아버지는 어설프게 눈만 모자이크 처리된 채로 카메라 앞에서 연신 고개를 숙이고 사죄한다. 가해자의 여동생과 어머니는 길을 걷는 모습마저도 카메라에 담겨 잡지 속 가십거리로 소비된다. 사진 속 가해자의 어머니는 카메라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고 분명히 거부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두 눈이 가려지는 최소한의 배려?만 허용될 뿐이다. 이 가족이 마을에서 버티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 약속이나 한 듯이 가해자의 가족을 비난하는데 모든 힘을 쏟아 붓기 때문이다. 결국 가해자의 가족은 마을을 떠나고, 곧 태어날 또 다른 아이의 미래를 위해 호적을 정리하는 등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된다.


물론, 한국은 이런 문화가 없는 탓에 가해자의 가족이 오히려 피해자의 가족에게 2차 피해를 입히는 등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저 드라마 속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이들의 권리는 어디 있는가. 정말 개인의 범죄는 그의 가족까지 단체로 나서 속죄해야 하는 영역일까. 그리고 그 속죄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살아간다'는 그 속죄가 15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나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그래도 가해자의 가족에게 남은 건 행복한 미래가 아니다. 고통 속에서 죽지 못해 쥐어 짜낸 최소한의 삶의 목적(의미) 뿐이다.

'그래도 살아간다'를 보면서 예전에 건너 건너 들었던 한 일본인 지인의 소식이 떠올랐다. 그의 가족 중 한 명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병명은 자세히 다룰 수 없다) 그런데 신기한 건 가족의 대처 방식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될 텐데 절대 병원은 안 된다고 했다. 물론, 한국도 '마음의 병'과 관련해서는 병원 검사를 꺼리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과는 성질이 달랐다. 그들은 마을에서 평판 때문에 병원을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 가족은 그 마을에서 꽤 오랫동안 정착한 가문이었고, 그 마을은 작지 않은 규모에도 매우 보수적인 분위기인지라 가족 중 한 명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소문이 나면 마을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더욱 이해가 어려웠던 부분은 그 소식을 전한 지인도, 병원은 절대 안 된다고 하는 지인의 부모도 그런 사고방식과 문화가 옳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래도 살아간다'의 가해자 가족과 병원을 가지 못하는 지인의 가족도 모두 '어쩔 수 없는', 이미 굳을 대로 굳어 버린 괴랄한 문화가 사람으로서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마저 집어삼킨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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