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갓 스무 살이었던 때의 꿈을 꿨습니다. 홍대에서 하루하루 즐겁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고 신도 났던 당시의 꿈을. 꿈에서 전 옛 친구와 홍대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저는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옷을 참 잘 입었습니다. 외모가 특출 나거나 몸매가 막 뛰어난 것도 아닌데 옷을 입는 감각, 센스가 정말 좋은 친구였습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친구 옆에서 저는 나름 노력했지만 어딘가 모자라고 어색한 옷차림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지지로도 옷을 못 입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도움들 끝에 이제는 그래도 나름 나만의 스타일이 있고 아주 가끔 주위에서 옷 입은 걸로 칭찬도 받을 만큼 사람답게 입고 다니지만, 그때를 생각해 보면 정말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습니다. 왜 그런 꼴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일찍이 옷 입는 법을 잘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늘 당당해 보이지만 저도 작아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남 앞에서 노래 부를 때. 저는 정말 한 없이 작아집니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고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러야 할 때면 정말 정말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 집니다. 하필 한국에서는 노래방이 워낙 대중적인 문화인지라 그런 불편하고 싫은 상황에, 한 없이 작아지는 상황에 있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걸 정말 싫어하지만, 그래도 피치 못하게 불러야 할 상황에 부를 수 있는 대 여섯 곡 정도는 이제 보험처럼 준비되어 있습니다. 춤을 추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게 왜 이렇게 부끄럽고 싫은지. 다행히 노래와 다르게 춤을 춰야 하는 상황은 많이 없지만 어쩌다 정말 가끔 그런 상황이 생길 때면 머릿속이 안드로메다 은하 마냥 복잡해집니다. 별의별 오만 걱정과 생각들이 쉼 없이 날아다닙니다. 그 밖에 잘 못 하는 스포츠,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를 잘하는 사람들과 할 때도 주눅이 들고 한 없이 작아집니다. 아, 해변에서 웃통을 까고 돌아다니는 것도 조금 부끄럽습니다. 몸이 막 좋지 못해서도 아니고 몸이 좋아야지만 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여기저기 붙은 군살과 앉았을 때 접히는 뱃살은 영 부끄럽습니다.
예전에는 저를 작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괜찮은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앞서 말한 패션. 제게 잘 어울리는 옷들이 이제는 사계절로 준비되어 있어 옷에 대한 스트레스는 예전과 달리 더 이상 없습니다. 또 예전에는 정말 미인이신 분들과 대화할 때면 뭔가 주눅이 들고 작아졌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인이건 연예인이건 심지어 대기업 CEO와 마주해도 하도 당당해서 도리어 문제입니다.
작아지는 것과 반대로 평소보다도 더 자신 있어지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 있는 스포츠, 탁구나 배드민턴을 할 때. 그리고 인원이 몇 명이 되었든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 왠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면 더 자신 있어지고 그 상황을 몹시 즐깁니다. 발표는 아무래도 언변과 임기응변 그리고 유머에 자신이 있어 남 앞에서 발표하는 걸 자신 있어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사람은 불편한 상황에서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저를 한 없이 작게 만드는 순간들이 훗날 돌이켜 보면 저를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게 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