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해 봤을 겁니다.
- 쳇바퀴 같은 회사 때려치우기
- 어느 날 갑자기 로또 당첨
- 배낭 둘러매고 자유롭게 세계 여행
허나 다들 생각에 그치는 이유는 현실이 마음 가는 대로 막 저지르기에는 그리 녹록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월세에 공과금, 미래를 위한 종잣돈, 가족들을 위한 생계 유지비. 달콤한 꿈을 오래 붙잡고 있기에는 분명하고도 쓴 현실이 늘 주위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월세/공과금 내자고, 종잣돈 불려 집 사자고, 다음 세대 뒷바라지 하자고 사는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끙끙 앓고만 있는 건 너무 멍청한 짓 같아 싫습니다. 진짜 너어무 싫습니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무엇을 왜 할 것인지 답을 해가며.
바랐던 일, 노력해서 기회를 잡았고 열심히 해봤고 이제 알만큼 다 알았습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참 많은 걸 배우고 또 느꼈으나 이제 더 이상은 배울 점도 없고 그래서 발전도 재미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째, 퇴사해야지요.
회사랑 계약한 일도 있고 7월에 스웨덴 및 노르웨이로 가족여행을 가기로 해서 퇴사는 다가오는 7월 30일로 정했습니다. 퇴사하고 아내랑 같이 줄 곧 얘기했던 대로 영국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영국을 떠나 여기저기 살아보며 정착할 곳을 찾을 심산입니다. 마땅히 다른 더 나은 곳이 없다 싶으면 뭐 영국을 돌아오구요. 첫 행선지는 호주입니다. 마음의 고향 퍼스로 돌아가 두 달간 로드트립을 할 예정입니다. 마가렛 리버를 들렸다 북쪽으로 그러고 나서 동쪽으로, 그렇게 시계 방향으로 세상에서 제일 드넓은 파라다이스를 크게 한 바퀴 돌 셈입니다. 가족에 새 멤버를 영입하기 전, 아직 그나마 팔다리 튼튼할 때 둘이 하는 마지막 긴 여행이 될 듯합니다.
로드트립을 마치고는 경주로 가기로 했습니다. 30대가 되고 깨달은 건 아무리 돈돈 해도 결국은 건강이, 가족이 그리고 사람이 남는다는 것. 건강을 위해, 가족을 위해, 사람을 위해 돈을 벌려는 것이지 돈을 벌자고 건강을 팔고 가족을 팔고 사람을 파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5년 전쯤 웹툰 < 닥터 앤 닥터 육아일기 >를 보다 마음에 크게 와닿는 구절이 있었는데, 대충 이런 대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언젠가 우주의 먼지가 되어 사라질 인생에 내 존재의 흔적을 가지고 다음 세대를 살아갈 아이가 삶의 의미가 아닐까. 아버지의 아버지가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 우리는 나를 물려줌으로써 이 넓은 세상에, 긴 시간에 우리를 남기는 게 아닐까'.
이후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부모님과 더 가깝게 소통하며 부쩍 가까워졌습니다. 매우 높은 확률로 한국이 아닌 외국에 정착할 것이기에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서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경주에서 있으며 아버지께 집 짓는 것도 배우고 어머니께 육아 도움도 받을 수 있어 경주로 가는 게 영 터무니없는 소리도 아니라고 생각했구요. 도리어 더 탄탄하게 준비하고 제네바로 갈 수 있을 겁니다. 고맙게도 경주로 가 부모님과 함께 부대끼며 사는 걸 적극 원한 건 아내입니다. 제가 장인어른 장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스스럼없이 친해진 것처럼 자신도 우리 부모님과 더 친해지고 싶다며 꼭 가자더군요. 부모님도 처음엔 당황하셨지만 한 번 해보자며 동의해 주셨습니다. 든든한 부모님이 계셔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다가올 미래에 새롭게 이루고 싶은 일을 적어봅니다.
- 열심히 집 짓는 기술 배워서 언젠가 우리 집짓기
- 미니 버스 개조해서 캠퍼밴 만들기
- 준비하고 있는 사업 제대로 운영해서 돈도 벌고 사회에도 기여하기
- 불어 영어만큼 자유롭게 구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