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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각 May 09. 2024

회사에는 독재자가 필요하다.

    무너져가는 회사를 보며 늘 생각했고 또 이제는 공식적으로 무너진 회사를 보며 생각합니다.


    '회사에는 독재자가 필요하다'.


    흔히들 '강한 리더십'이라고 표현하지만 저는 이걸 더 직관적으로 '독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게 '강한 리더십'은 뭔가 영국의 신사 숙녀분들이 쓴소리 하는 게 어려워 어떻게 하면 '독재'라는 말을 조금 더 교양 있고 있어 보이게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해서 억지로 만든 느낌이 있어 거부감이 듭니다. 참고로 영국 문화에서는 무언가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하는 걸 무례하다고 생각해 피해야 하고 항상 둘러둘러 간접적으로 착하게 예쁘게 말해야만 하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직설적인 화법을 선호하는 저는 이런 영국 문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튼 본론으로 돌아와 회사가 크던 작던 강력한 독재자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독재자는 사람들을 못 살게 굴고 무례하게 대하고 윽박지르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회사의 비전과 방향성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그런 조타수와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초대 창업자이자 막강한 독재자였던 Anita Roddick이 떠나고 The Body Shop은 오랫동안 방황했습니다. 어떤 가치를 챙기고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그 방향성이 몹시 불분명했습니다. Anita를 이어 들어온 전문 경영진들은 하나같이 다른 경쟁 브랜드를 따라 하기 바빴고 그렇게 바디샵의 정체성은 사라져 갔습니다. 회사에 입사하고 두 달쯤 지났을 때부터 회사가 실적부진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가 정리해고 당할 때까지 저는 회사가 늘 키가 부서진 채로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경영진이 방향성이 없으니 그 아래 각기 다른 부서와 그 부서의 이사, 부장, 차장 모두 본인 멋대로 회사를 해석하고 그에 맞춰 일했고, 그러다 보니 회사라는 물건을 중간에 두고 여러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모양새였습니다. 프로젝트는 늘어지거나 취소되기 일 수였고 회사는 정체되어 점점 낡아만 갔습니다. 그럼에도 꼴에 대기업이라고 절차는 또 어찌나 많은지 문제점이 뻔히 보이더라도 해결되기까지 몇 달, 몇 년은 우습게 걸렸습니다. 분기마다 하는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회사의 방향성 부재를 지적하는 직원들이 한 둘이 아니었건만 경영진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내 회사도 아닌데 뭐, 위험부담은 져서 뭐 하나 잘 나가는 다른 경쟁 브랜드나 따라 하다가 커리어 좀 쌓고 나가지 뭐~'라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어디서 Anita의 숨겨뒀던 자식이 나타나 부모님이 일구신 회사를 진심 어린 애정으로 뜯어고치면 회사가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이렇게 회사가 무너져 가는 일련의 과정을 보며 참 많은 걸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먼저 회사에는 회사에 애착이 있는 강력한 지도자가 꼭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회사가 오래도록 살아남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그 지도자를 이을 후계가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나아가 아무리 뛰어나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있어도 방향성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시너지는커녕 다들 방황만 하다 무너져 내린다는 것. 우리가 잘 아는 애플,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그리고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 최고의 대기업들만 봐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독재자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쉬이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사업을 준비함에 있어 중요한 교훈을 얻어 좋으면서도, 편으로는 이전 직장이기 전에 오래도록 바디샵 제품을 좋아해 소비자로서 마음이 좀 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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