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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우탱고 May 09. 2023

일기장

 귀를 막아도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 소리는 손을 떼어도 여전히 속삭임으로 있습니다. 눈을 떠서 두리번거리지만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제 마음에 있으니.


 그녀의 걸음이 느껴집니다. 평안히 박자를 맞추듯 걸어 나오던 그녀의 고요한 발걸음. 희고 작은 발의 걸음마다 가늘게 떨리는 새벽의 바람이 스쳐간 나의 옷 끝에선 "후"하고 불면 금세 날개가 되어 날아갈 듯한 가늘한 향기가 퍼덕입니다.


 어느새 동녘을 밝히는 해가 되어 그녀의 맑고 맑은 몸을 에워싸더니 붉고 붉은 그녀의 입술이 제게 말을 합니다. 수많은 말들을.


 하지만 빛을 머금은 그 맑고 붉은 목소리가 하는 수많은 말들 중 무엇이 진실인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저는 너무도 딱딱한 나무조각입니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형체도 알 수 없이

까맣게 타버리는 나무조각.

 

귀를 막습니다. 가슴 설레는 향내와 사랑의 음률을 내뿜던 그녀의 입술이 이별의 눈물로 떨려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또 보지 않기 위해 그렇게 눈을 돌려보지만.


 바보가 되어버린 나의 뇌는 두려움 없이 거짓 정보를 늘어놓습니다. 이미 나의 이성은 그 기능을 다하여 시간의 흐름조차도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나는 무지의 공간 속에서 그녀가 두고 간 얘기들을 따라 부유하며 맴돌았던 그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2000년 10월 그 어느 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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