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몸도 마음도.

by mini

추석 며칠전부터 목이 따끔거리고 아팠다. 나는 약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기에 그냥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유난히 혈관이 약해서 해열진통제를 먹으면 신장 미세혈관이 파열이 되면서 소변에 혈액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오한이 오고 목이 너무 부어서 음식물이 넘어가지 않았다. 급하게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서 먹었더니 열은 내렸고 인후통도 가라앉아 가고 있지만 소변에 혈뇨가 보인다. 급한 불만 끄고 인후통 약을 그만 먹었다.


입맛이 없다보니 뭘 먹을수가 없고 그러다보니 힘이 없다. 하루종이 누워만 있다. 곧 외지에 나가 있는 아이들이 올텐데 걱정이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하지말라고 하지만 그럴수가 없어 마트에 가서 이런저런 먹을거리를 사가지고 왔다. 온 몸이 천근만근이다.


아이들이 와서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고 나는 지시만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아이들을 보니 힘이 났다.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틈틈이 누워서 이야기를 하고 낮잠도 잤다. 평온했다. 나는 아들녀석과 거실에 큰 이불을 펴놓고 같이 잤다. 자는데 누군가 내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아들녀석이었다. 왜 안자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코를 심하고 골고 숙면을 못취하고 자꾸 뒤척이길래 많이 아픈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마, 내가 장가를 가면 이제 엄마 머리카락도 못 만지네" 라고 말했다. 또 " 아들이 장가가면 엄마들은 많이 서운해 한다던데 엄마는 어때?" 라고 물었다.


아들이 장가를 가게 되면 서운하다는 말을 친구들이 많이들 하고 있다. 나도 그럴까봐 정서적 독립을 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그들의 삶이 분명 나랑 다를 것이다만 나는 인정을 할 것이다. 명절때 나를 보러 못온다 해도 나는 씩씩하게 견뎌낼 힘을 길러야 한다. 아들녀석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바리바리 싸서 아들집으로 방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항상 물어보고 원하는 것만 줄 것이다. 나의 노후대책은 내가 해결할 수 있음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끝에 부모님의 과도한 요구에 부모와 절연을 한 친구가 있다는 아들녀석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절대 아이들에게 부담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들녀석과 손을 꼭잡고 나머지 잠을 청했다.


아이들이 각자의 터전으로 가고 난후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저 침대에 쓰러져 밤이 오는줄도 모르고 잤다. 배가 고파서 일어났는데 남편은 혼자서 밥을 챙겨서 먹고 있었다. 갑자기 서운했다. 나는 입맛이 없는데 내가 뭘 먹던지 말던지 관심이 없고 오직 본인 먹을것만 챙겨서 먹는 남편이 서운했다.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다. 도로 방에 들어와서 잠을 청했다. 잠을 잘려고 누웠는데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 행주가 다 젖어 있다느니, 하루살이 초파리가 왜 날아다니냐는 둥 나를 향한 질타들이 쏟아졌다. 설거지를 안했더니 행주가 젖어 있었나 싶고 초파리들은 식탁위에 포도를 두었더니 그런가 보다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초파리가 좀 있으면 어떻고 행주가 젖어 있으면 짜면 되고 내가 아파서 이러고 있는데 그런 지적질이 내 마음에 가시가 되어 박힌다. 그렇다고 이렇다 저렇다고 설명할 힘도 없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생각났다. 35년간 같이 살면서 변화가 없다. 지금은 퇴직을 한 후라 시간이 많아서 더 많은 지적질이 내게 향한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지만 내 마음은 이미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파브로프의 조건반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