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길고양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났는가.
나는 종교가 없다. 종교를 가질려고 절에도 가보고 교회도 가보고 성당에도 가 봤는데 도무지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기에 나도 가져볼 작정이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잘 안되었다. 그래서 그냥 종교 없이 살기로 했다. 아니 나의 종교는 길고양이의 끼니를 챙겨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나의 종교다.
시골주택에 이사온 지 5년째이다. 여기는 길고양이들이 많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은 길고양이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이유인 즉슨 개체수가 늘어나면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와 쓰레기 봉투를 찢어놓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길고양이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걸 어쩌나. 개체수 증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왜냐하면 길고양이 수명은 길어야 3년 정도이다. 병들고 추위와 더위 그리고 차량에 부딪혀서 사망하기도 한다. 또한 쓰레기 봉투를 찢어놓기도 한다만 그건 먹을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먹을 것을 챙겨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선 나의 배우자부터 질색팔색 한다. 이유는 먹이를 주면 자꾸 온다는 것이다. 오면 어때? 라고 반문하면 그냥 오면 안된다고만 외친다.
나는 아무도 몰래 그들의 먹이를 챙겨주기로 했다. 오늘은 마당 오른쪽 귀퉁이 대추나무 아래에 어두운 색 그릇에 음식을 담아둔다. 내일은 마당의 오른쪽 귀퉁이 자두나무 아래에 음식을 놓아둘 것이다. 이런 나의 무언의 약속은 길고양이도 알아차렸는지 희안하게 알고 찾아서 잘도 드신다. 내가 미처 음식을 내놓지 않고 있으면 나의 작업실앞에서 길게 목을 빼고 들여다 본다. 어찌 이뻐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며칠전의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대문앞에 길고양이 한마리 널부러져 있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에 다가가도 꼼짝도 않은 채 그대로 있다. 몸이 굳어 있다. 차에 부딪힌 흔적도 없고 무얼 잘못 먹었단 말인가. 그런데 여기 저기 곳곳에 낯이 익은 길고양이들이 같은 자세를 하고 있다. 검고 흰 얼룩 고양이는 입에서 뭔가를 반쯤 토해낸 채로 눈도 감지 못한 채 누워 있다. 기암할 노릇이다.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런 사태가 벌어질때까지 무얼 했단 말인가. 진정 그들을 사랑했다면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를 했어야 했다. 고작 한다는게 남의 눈을 피해서 끼니를 챙겨주는 것 뿐이었으니 나는 할말이 없다. 그들을 사랑한다고도 말할 자격이 없다.
오늘 아침 귀한 손님이 오셨다. 어렵게 살아남아 나를 찾아온 길고양이다. 나의 작업실 문앞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따뜻한 우유와 사료를 챙겨 주었다. 허겁지겁 우유를 입가에 잔뜩 묻혀가며 열심히 먹고 있다. 실컷 먹었는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열심히 세수를 하더니 지금은 테이블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를 믿어라, 결코 널 해치는 음식은 주지 않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