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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건 Aug 01. 2022

사후세계는 어떨까?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7일 차. 우울증 방치 실험-말기 증상: 자살사고

고등학생이던 나는 고시텔 침대에 누워 밤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세상은 사실 게임이 아닐까? 내가 주인공 캐릭터고, 내가 이 게임에서 사라지면 중지되는 게 아닐까?'


나는 부정했다.


'아니지. 이 세상이 게임이라면 나는 아예 안 죽겠지. 주인공 캐릭터가 죽으면 게임이 진행이 안 되니까 게임 시스템이 살려놔야 . 그래서 게임 캐릭터들은 죽어도 부활하잖아. 엔딩을 볼 때 까지는 계속 계속.'


나는 퍼뜩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나 살면서 죽을 만큼 크게 다친 적이 없어.'


그때 내가 살던 곳은 최고층이 4층인 낮 건물이었다.


'4층에서 떨어지면 죽을 가능성은 낮아. 실험해 볼 가치가 있어. 만약 진짜 이 세상이 게임이라면, 내가 죽으면 다시 부활시킬 테니까. 만약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게임이라 해도, 이 세상 전체가 나와 함께 꺼지는 거라면...... 이 죽음에는 가치가 있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 걸. 궁금하다. 한번 해 볼까?'


위의 생각들이 어때 보이는가? 상상력이 과한 사람의 망상, 사후세계를 궁금해하는 사춘기 고등학생. 한 번 정도 사후세계를 궁금해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이해해도 괜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자주 한다면, 죽고 난 다음을 지나치게 궁금해한다면, 그래서 삶보다 죽음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이 자살사고다.


결론적으로 위의 생각은 자살사고다. 이 세상이 게임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증명해보기 위해 4층에서 뛰어내리는 일을 '실험'이라고 부르며 '한번 해 볼까?'라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자살할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내가 죽는 경우만을 따져 뛰어내리려 한 것은 아니다.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죽지 않을지, 부활한다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하였다.


이 궁금증에 떠밀려서 정말 4층에서 낙하하 사건이 벌어졌다고 가정해보자. 응급실에 간 나는 이렇게 답해야 했을 것이다.


"세상이 게임인지 아닌지 실험해 보기 위해 뛰어내려 보아야 했어요. 자살 의도는 없었고요."


이 답변이 정상적인 사고에서 나왔다고 받아들이기는 어렵. 또한 실제로 나는 위에서 이렇게도 생각했다.


'이 세상 전체가 나와 함께 꺼지는 거라면...... 이 죽음에는 가치가 있지.'


죽을 의도가 아예 없었다면 이런 생각은 떠올리지 못하고 실험을 했을 것이다. 진짜로 죽지 않을 것이라 믿고 뛰어내린 경우에는 또 다른 정신질환으로 진단될 것이다.

다른 정신질환으로 인해 4층에서 자의로 뛰어내린 것도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내린, 자살사고로 인해 일어난 자살시도다.


그저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만 했을 뿐인데 자살사고라니? 좀 과도한 진단이 아닌가? 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먼저 '언제 어딘가에서 어떻게 죽겠어' 또는 '지금 당장 죽겠어'라고 생각하는 것만이 자살사고는 아님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위의 생각에서 나는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여, 구체적으로 죽을 방법을 결정하였다(4층 낙하). 그리고 '실험'-즉 실행에 대한 의사를 갖고 있었다. 침착하게 생각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내용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 '4층에서 뛰어내리겠다'가 생각의 결론 아닌가.

이 외에도 내 장례식에서는 누가 울까, 사후세계는 실존할까, 내가 사후세계에 간다면 어떨까 등의 생각을 자주 하는 것도 자살사고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울증 방치 중기 증상까지는 내원이 불가능할 경우, 우울증 응급처치법우울증 민간요법을 병행하며 자신을 돌보며 버텨보기를 권했다.


그러나 우울증 방치 말기 증상인 자살사고에 관해서는 내가 어떠한 방안을 권할 수가 없다. 나의 자살사고 사례자살사고 인식에 도움을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글을 읽고 본인의 생각이 자살사고가 맞다고 느낀다면, 서둘러 내원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글을 읽어보아도 현재의 생각이 자살사고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렵다면 아래의 링크에서 자살사고 자가진단을 진행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만약 자살사고가 심해지며 충동 또는 열기가 올라오는 중이라면 날카로운 물건, 약물 등을 치워야 한다. 창문도 걸쇠로 한 번 더 잠가 두자. 그렇게 해도 자살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라고 느껴지면 119를 불러야 한다.


아직 아무 일도 없는데 119를 어떻게 부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19에 전화해 자살사고가 있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하면 구급대는 출동한다. 아무 일도 없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구급대는 자살사고가 있는 상태를 죽을 수도 있는 상태로 보고, 당장의 외상이 없더라도 심각한 상황으로 분류한다. 이렇게 구급차를 타면 응급실로 간다. 응급실에서도 자살사고를 정신과적으로 위급한 상황으로 보고 진료한다. 자살사고는 죽음 또는 심각한 신체적 손상을 야기할 수 있는 발작 상태로 비유할 수 있겠다.


내 우울증 방치 실험은 다행히 이 말기 증상에서 멈췄다. 말기 증상이 자살사고인 이유는, 이다음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증상이 아닌 상태이다. 죽은 상태. 따라서 자살사고가 든다면 더 미룰 수 없다. 지금 당장 병원에 가서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내원 권유 외에 내가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없으므로 내가 뛰어내리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말하고 글을 끝내고자 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아직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내한하지 않았잖아. 그가 노래하는 건 실제로 한 번 보고 싶은데.'


가장 좋아하는 가수도 못 보고 가기에는 지금까지의 고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박한 이유지만, 당장 내일 아침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내한한다는 공지가 올라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정말로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만약 내가 죽은 다음 날 한국 콘서트 공지가 뜨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 보고 더 먹고 더 듣고 더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결국 난 그 가수의 내한공연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거였구나. 이런 환희가 나에게 올 예정이었구나. 다음 공연에도 가야지. 그다음 공연에도. 또 그 다음다음 공연에도-라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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