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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건 Aug 04. 2022

대학 가면 우울하지 않겠지?
취직하면 우울증 낫겠지?

8일 차. 나의 병은 나의 대학과 회사를 따라온다

미성년자이던 나는 가족의 반대로, 정신과에 내원해 우울증을 치료받지 못했다. 고삼이 되니 입시 스트레스까지 따라붙었다.

그로 인해 불면증, 공황장애, 자해, 자살사고가 악화되었다. 하지만 대학에 가는 것 외에 이 상황에 따른 고통을 타개할 방법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 상황이 나아지면 우울증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에 매달렸다.


'내가 입고 싶은 옷도 입고, 술도 마시고, 친구들이랑도 놀고, 또 어쩌면 정신과에 갈 수도 있겠지. 아니지? 정신과에 갈 필요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질 수도 있잖아!'


나는 내 생각에 격하게 동의했다.


'맞아. 대학에 가면 우울증 다 나을 거야.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거잖아. 조금만 버티자. 이 고통도 다 끝이다.'


나는 결과적으로 원하던 대학의 목표하던 과에 입학했다. 수시 합격이었다. 주변의 축하도 듣고 고삼 막바지에는 공부도 안 하고 게임만 했다.


대학 입학 후 초반에는 당연히 신이 나고 좋았다. 성인도 되었고 대학생도 되었으니 다 내 마음대로 해도 되잖아? 더 이상 입시 스트레스도 없었다. 대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볼 일은 전보다 더욱 줄었다. 대학 공부도 어렵지 않았다. 예술고등학교 때 배우던 전공과목을 이어서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입생 환영회나 엠티, 뒤풀이에 가서 가끔 울컥했다. 왜 내가 여기서 놀고 있지? 아니지. 노는 것조차 아니야. 즐거운 척을 하는 것뿐이잖아. 괴롭다, 는 감각이 치솟으면 술을 취할 때까지 마셨다.


참고로 지금의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마신다. 숙취가 무척 심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토하고, 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프.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이다.

그런데 스무 살에는 술에 취할 만큼 술을 마셨다. 그것도 빈번하게. 숙취는 그때도 똑같이 심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술을 마셨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술을 마셔서 어떤 효과를 얻었는지 보아야 한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현재에 집중하지 못했다. 자꾸 들이닥치는 여러 생각들이 고통스러웠다. 눈을 뜨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지 걱정스러웠고 하루를 보내는 사이사이 불쑥 괴로웠다. 씻고 누워 눈을 감으면 언제 잠들 수 있을지 막막했다. 겨우 잠을 자게 되어도 꿈이 가득했다. 어떤 날은 가위에 눌려 안 자느니만 못했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 오로지 취한 감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생각은 사라졌다. 어지러웠고, 세상이 빙빙 돌았고, 모든 것이 나랑 아무 상관없게 느껴졌고,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침대에 누우면 꿈 없이 잘 수 있었다. 불면증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너무나 편안했다.

고통의 총합을 따져보면 술을 마시는 것이 이득이었다. 숙취만 견디면 되니까 말이다.


성인도 대학생도 되었으므로 나는 마음껏 술을 마셨다. 내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 내 마음대로 마셨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마음만큼은 절대 내 마음대로 되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시켜 주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내 마음과 정신은 고통스러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계속 술을 마셨다. 결국 술을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니었다. 나는 술을 향정신성 의약품 개념으로 멋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성인이 되었지만 경제권은 여전히 부모님에게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보험 가입이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또다시 내원을 반대했다(대부분의 정신병은 보험가입 거절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 나도 엄마 말에 겁을 먹고 정신과에 대해 더 알아보지 않았다. 술 덕에 미성년자일 때보다 덜 괴로운데, 굳이 정신과에 가야 할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숙취 때문에 기숙사 변기를 붙잡고 있던 어느 새벽녘에 나는 깨달았다.

나는 이미 상황이 달라지면 좋아질 거라는 믿음으로부터 배신당했었다.

중학생 때, 예술고등학교에 붙어서 자취를 하게 되면, 아버지를 안 보게 되면 우울증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어땠는가?

초반에는 나아지는 듯했지만 결국 또 우울해지지 않았는가?


목표하는 학교가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바뀌었을 뿐이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매번 원하는 학교에 입학했는데도 괴로웠다. 상황이 좋아진다고 해서 내 우울증이 낫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분명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 행복해져야 하는데 나는 그대로였다. 고통스러웠다. 조금 기쁘다가도 곧 다시 우울해졌고 괴로운 채로 지냈다.


한국의 학생들과 취준생들은 원하는 곳에 붙으면 우울증이 나을 것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대학에 가면 나아지겠지, 취업하면 나아지겠지, 원하던 곳으로 가면 분명 달라지겠지.


아니다. 나의 '상황'이 변화할 뿐, '나'는 그대로다. 내 병은 여전히 나와 붙어 있다. 원하던 회사로 이직한다고 해서 부러졌던 다리가 붙겠는가? 그렇지 않다.


스무 살의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우울증에는 적용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술을 계속 마셨다. 술을 마시면 편안해졌고 나는 성인이니까. 부모님이 정신과에 내원하는 건 반대했어도 술을 마시는 건 괜찮다고 했으니까.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한 선배가 물었다.


"왜 그렇게 술을 마셔? 너 술 잘 못 마시던데."


나는 술을 마시면 고통스럽지 않고 잠이 잘 온다고 대답했다. 선배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했다.


"너 그러다 알코올 의존증 된다. 병원에 가든지 술을 끊든지 둘 중 하나는 해."


나는 충격을 받았다. 성인이 되었으니 원하는 만큼 술을 마셔서 고통을 해소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새로운 병이 따라붙을지도 모른다니. 덜컥 겁이 났다.

내가 그날부로 술을 끊지는 못했다. 인생은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음주량을 천천히 줄여 갔다. 충동적으로 과음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고통과 불면을 술로 풀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 늘 내 안에 있었다.


결국 나는 스물세 살 여름 즈음에 술을 더 이상 먹지 않게 되었다. 정신과에 내원한 지 1년이 넘었을 때였다. 우울증의 고통은 처방된 약들로 해소가 가능했다. 불면증 약인 아고틴정도 효과가 좋았다. 술을 먹고 자는 것보다 아고틴정을 먹고 잘 때 훨씬 깊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때 내 상황 자체는 그리 좋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힘들었다. 유학을 가려했는데 여러 일들의 진행이 더뎠다. 스트레스를 좀 받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전보다 빨리 자고 꿈도 덜 꿨고 가위에도 눌리지 않았다. 아침에는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저녁에는 공부를 하고 밤에는 침대에 누웠다. 


이 모든 일련의 평범한 생활 과정을, 아무 고통 없이 하게 될 때까지 꽤 오래 걸렸지만, 결국 제법 편안하게 하게 되었다. 유학은 가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자괴감이나 죄책감은 없었다.

유학을 못 간 것은 나의 '상황'이다. 그리고 상황은 늘 어쩔 수 없다.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우울증은, 나의 정신병은 약으로 조금이나마 돌볼 수 있다.


여전히 가끔 불안하고 때때로 답답하고 종종 괴롭다. 그러나 이전처럼 매일매일 괴롭지는 않다. 그리고 너무 아프면 '필요시' 약을 먹으면 된다. 그 사실이 안심이 된다.

꾸준히 약을 먹어온 덕에 오늘도 괜찮았다. 지금은 새벽 한 시 십 분이다. 이 글을 올리고 아고틴정을 먹을 것이다. 세수하고 양치를 한 다음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유튜브를 보면서 조금 웃다가 불을 끈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 오늘은 괜찮았어. 그러니 이제 그만 자자. 꿈도 가위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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