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 돈의 실험
상대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듣지 않고 아니 듣고 싶지 않을 때 상대를 순간적으로 굳어버리게 만드는 말이 있다. “중요한 것은 느끼지만 너무 어려워요” 이는 입 다물어 달라는, 더 이상 듣기 싫다는 정중한 표현이다. 대화에서도 그렇지만 비슷한 말 하나를 인문학 책을 읽으며 심심찮게 만난다. 이 말을 하면 마치 “중요할 수는 있겠지만 또 내가 잘 모르기는 하지만..”이라고 하면서 그냥 넘어가고 싶어 하는듯 하다. 결국 동의하기 싫다는거다.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살짝 건드리고 넘어가면서 은근하게 비판한다. 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가도 여러 책에서 구조주의를 살짝씩 비판하니 역으로 궁금해진다. 단어의 뜻 그대로 구조라는 형식을 중요시하면서 내용을 놓치는 뭐 그런 한심한 사상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구조주의가 언어, 소통 기호 그리고 사회가 작동되는 여러 형식 등을 다루는 꽤 설득력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는 적잖게 놀라게 된다. 형식보다는 의미를 담는 내용을 다루어야 한다고 평소 강조하다가도 상대를 공격하기 어려워지면 그저 우파, 좌파로 몰아 붙이는 편향적인 자들의 고리타분한 논리를 구조주의를 비판하는 태도 속에서 보는듯 하다.
당신이 만약 “중요한 것은 느끼지만 너무 어려워요”라는 말 들으면 쉽게 설명하려 노력하지 말고 입을 다무는 것이 현명하듯, 구조주의 견해 아니냐는 말을 들었을 때도 상대는 당신의 논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음을 빨리 간파해야 한다.
구조주의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 작동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수만 있으면 사회질서는 물론이고 개인의 바램도 저절로 완성된다. 반대 방향의 생각도 있는데 개인이 올바로 서면 이상적인 사회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전자는 구조와 제도 등 이상적인 형식을 통해 사회 구성 개인의 인격도 완성된다는 구조주의의 주장이고, 후자는 바람직한 개인의 인격이 형성되면 사회의 구조와 제도는 이와 다르지 않게 따라서 완성된다고 보면서 구조주의와 반대 견해를 가진다.
구조주의에게 언어는 각별하다. 단어 하나에 고정된 의미가 담기는 대신 언어체계가 갖는 구조 속에서 단어의 의미가 결정된다고 믿는데 그들에게 언어란 파롤parole이 아니라 랑그langue인게다. 말과 글은 오직 소통 속에서 생명력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언어로 설명되는 개념도 정해져 확고한 내용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체계 속 부딪히는 관계 속에 결정된다고 보았다. 언어에 대한 이런 해석은 언어가 확장된 기호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인지 하나가 곧 기호 하나라고 믿는 것인데 의미가 고정된 기호가 아니라 살아 숨쉬듯 의미를 바꿔가는 기호를 말한다. 의미는 몸, 기호는 옷과 같은데 옷이 몸을 바꾸는 형국이다. 몸이 옷을 바꾸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옷의 관점에서 본다면 옷이 몸을 바꿔간다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번의 인지로 기호란 옷에 의미란 몸을 채우면 성숙된 지식은 한참 후에 나타난다. 즉, 제대로된 지식은 시차를 두고 찾아오기 마련이다. 옷 입힌다 대신 몸 채운다 라는 표현이 생겼다.
하지만 이해 안되는 현상이 보인다. 의미에 돈이라는 옷을 입혀서 경제소통을 완성하는데 아쉽게도 돈이란 옷은 사용 직후 금방 벗겨져 버린다. 돈의 장점이자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다. 사회 구조를 완성시키지만 자신은 정작 작은 벽돌하나 얹지 못하는 도구 아닌 도구이다. 자신의 자리를 갖지 않으니 오히려 크게 쓰인다고 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으니 함부로 악용되기도 한다. 두사람이 만나 돈으로 거래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증거가 필요한 거래에서는 장부를 대신 써왔다. 거래 지불 후 정산의 절차를 따로 거쳤던 것이다. 거래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공급자와 구매자의 돈은 바로 정산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 기술이 마련되었음에도 이런 절차는 유지되고 있다. 이번 티몬, 위메프 정산지연 사태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제 거래 지불과 정산을 분리하는 것을 청산해야 한다. 정산을 분리하는 대신 돈에 표식을 할 수 있는 디지털시대의 거래를 본격적으로 고민하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 토큰이 가장 가까이 있는 현실적인 기술이다. 돈의 실질적인 움직임을 지금까지는 거래 지불과 분리된 차후 정산을 통해 마무리 했다면 이제는 거래와 동시에 현금의 흐름이 완결될 수 있다. 거래내역이란 이벤트 기록을 토큰이란 형식 속에 채우면 된다. 정산이 영어로 clearance, 즉, 정리하고 마무리한다는 뜻이었다면 디지털 시대의 토큰 기호가 정산과정을 별도로 두지 않아도 정산 자체를 필요없게 만든다. 정산 문제의 해결은 거래를 여러 과정으로 나누어야만 했던 표식되지 않는 돈의 한계를 극복하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돈에 표식이 생기는 토큰을 통해 구조주의의 주장대로 돈이 비로소 의미라는 몸을 옷 속에 “직접” 채우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토큰 경제가 부상되고 또 주목해야할 이유이다.
일상에서 사회 구성원이 마치 분자들이 모여 반응하고 흩어지는 풍경처럼 만드는 유기체 사회 속에서 기호는 열심히 일한다. 기호가 사회구조를 형성하며 구조는 다시 기호를 통해 변모하는 식이다. 기호로 이루어지는 소통이 구조를 만드는지 구조가 소통을 이끄는지 구별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