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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Jan 17. 2024

새로운 곳을 점령한 꽃고양이

낯썸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호기심을 갖고 도전하자

 우리 집 첫째 고양이 온이는 다소 얌전한 성격으로 캣타워 외에는 위에 올라가지 않는다.

눈치도 빠른 건지, 내가 교육을 잘한 건지  테이블이나 싱크대는 잘 올라가지 않는다. 사실 나는 고양이들이 좀 더 자유롭길 원하기에 별다른 교육은 하지 않아서 테이블에 올라온 온이가 별 말썽을 부리지 않는 한 그대로 둔다. 그런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온이도 얌전하게 돌아다니고 낮잠을 자고 밖을 구경하는 것이 온이의 일과다.





 둘째 고양이 흑미는 그야말로 야생마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 아이는 첫 만남 때부터 마치 친 가족과 상봉이라도 한 듯 바지를 기둥 삼아 올라와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온 케이스다. 처음 집에 왔을 때는 감기에 걸려서 드릉드릉 콧물소리를 내면서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잘도 뛰어다녔다. 그러던 꼬맹이가 벌써 8개월 차다. 워낙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타입이라 그런지 감기는 이미 저리 멀리 가버렸고, 건강하고 또 건강하다. 이 아이는 온이와는 다르게 싱크대가 자신의 놀이터이다. 캣타워는 이미 2개월이 안되었을 때 천정까지 올라갔고 그다음은 싱크대..


그리고 이번에는 결국 우려하던 곳까지 올라갔다.


바로 냉장고 위.



 나의 잘못이라면 잘못이지. 가구를 마치 계단처럼 냉장고 위로 오르기 좋은 포지션으로 옮겨둔 것이다.

미관상 위치상 냉장고만 턱 올려있는 것보다 옆으로 긴 책꽂이를 배치하고 그 옆으로 약간 높은 커피숍 카운터 테이블(정식 명칭을 모르겠어요)을 배치하였다. 거실을 넓게 해서 아이들의 노는 곳을 확보하고 싶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거실에서 신나게 뛰어놀고도 잘 곳까지 마련되었으니 좋아 보였으나, 평소 사용하지 않던 주방 쪽을 사용하게 되어 나의 영역뿐 아니라 아이들의 영역도 넓어졌다. 특히 흑미가 아주 마음에 드는지 여기저기 올라다 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냉장고 위에 올라간 아이를 내려오게 하기 위해 의자를 딛고 올라가 끌어내려도 보고, 냉장고 위를 조금 더 높이기 위해 장해물을 놓고, 책꽂이 위에도 물건을 올려두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이 아이의 도른자의 끼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러다가 흑미가 꼬치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손에 장난감을 들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빛의 속도로 냉장고에서 내려왔다. 그 후로는 흑미가 냉장고에 올라갈 때마다 장난감으로 조금이라도 놀아주게 되었다. 이제는 냉장고에 올라가는 것이 마치 놀아달라는 스위치라도 된 듯 흑미는 자주 올라갔다.


 새로운 곳에 올라가고, 엄마집사의 새로운 반응을 보는 것이 흑미에게도 새로운 자극이 되었는지 이제는 저녁에 잠도 잘 잔다.


 나는 새로운 곳,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에 익숙해지는 것이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서 더더욱 그러한 성격은 심해져서 더욱 새로운 것을 기피하는 사람이 되었다. 커피숍도 가던 곳만을 가려고 하고 일도 하던 일만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나의 세계는 좁아져만 갔다.


 어느 날 문득 보니 나는 매우 좁고 조급하고 예민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항상 머리가 아팠고,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하다 보니 점점 몸도 딱딱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했던가. 나는 몸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그 말의 뜻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나에게는 변화가 필요했다.


 흑미가 냉장고 위를 처음 보면서 자기가 올라갈 수 있을지 가늠해 보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 저 아이 올라가고 싶은 건가?? 어떻게 내려오려고 그러는 걸까.. 나의 우려는 뒤로 하고 흑미는 이제 냉장고에 잘도 올라가고 잘도 내려온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나는 마치 바닥만 돌아다니는 고양이에 비할 수 있지 않을까. (온이랑은 다르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바닥밖에 모르는 고양이... 두려움이 가득해 오들오들 떨고 있는 고양이인 나.


 뭔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때임이 분명하다. 흑미가 내게 가르쳐 준 것처럼 냉장고 위의 새로운 장소를 나도 발견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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