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우리 집에 온 지도 7개월이 넘어가는 흑미의 이런 포즈는 처음 보았는데 한쪽 다리는 벽에 대고 한쪽다리는 바닥에 붙인 채 넓디넓은 배를 보여준 것이다.
흑미의 배의 하얀 털은 어떤 모양일까 궁금했던 차에 너무나 자세히도 볼 수 있는 멋진 기회였다. 평소에는 앉아 있거나 누워도 옆으로 누워있었기에 일부러 등 쪽으로 눕게 돌리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흑미의 하얀 털은 배에 마치 동물모양 융단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 약간의 끊어진 입까지 이어진 타이가 있다.
총명해 보이는 눈에 비해 게으름이 묻어있는 몸뚱이는 언제 보아도 귀엽다. 흑미도 스스로가 귀여움을 받고 있는것을 아는지 스스럼없이 행동을 한다. 정말 너무 귀여운 존재다.
정말이지 이렇게 누워있으면 사진을 안 찍고는 배기지 못한다.
이 아이는 언제부터 이렇게 나를, 우리 집을 편하게 생각했을까. 물론 흑미의 경우 처음부터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양 낯가림 없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몸을 타고 올라올 정도로 사교성이 좋았지, 지금에 와서야 배를 보여줄 정도로 자기만의 낯가림을 할 줄 아는 아이이다. 전에는 만져달라고 머리를 들이밀지도 않았는데, 요즘에는 형인 온이를 따라 만져주고 엉덩이를 두드려 주고 뽀뽀해 줄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는다.
매우 귀찮아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나를 엄마로 인정해 주고 예쁨을 받고 싶어 하는 말 못 하는 동물들의 표현인가 하는 생각에 이 두 아이의 어리광에 응해주곤 한다.
인간관계에서는 '나'를 보여주는 것이 쉽지 않다. 그저 상대와의 시간이 길다고 해서 내 모든 것을 보여줄 수도 없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 힘들게 느껴진다. 나는 충분히 친해졌다고 해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면 이내 나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나를 속단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게 여러 번 이른바 '베스트 프렌드'라는 사람들을 바꾸고 나면, 사람들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는 것에 혐오를 느끼게 되거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내가 허락한 곳까지만 친해지는 연습을 하게 된다.
물론 친할수록 매너도 지켜야 하고 상대를 소중히 여겨 줘야 하지만, 그것과 자신을 보이지 않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우리 집 고양이들은 나에게 다가올 때 나의 얼굴을 바라보거나 살포시 다가와 "냐~"하고 말을 걸어온다. 마치
'엄마, 들을 준비 됐어? 나 할 말 있는데?'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왜 우리 온이~ 엄마한테 할 말 있나?? 우리 흑미는 뭐가 필요해요??" 하고 응수하게 된다.
낮잠을 자거나 어리광을 부릴 때는 배를 보일 정도로 편안한 자세면서도 이렇게 뭔가를 원할 때는 조심스럽다.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켜야 할 예의나 매너는 꼭 지켜야 한다. 그것들에서 사랑이 느껴지니까. 그렇다고 해서 나를 너무 감출 필요는 없는데, 내가 상처를 받은 일이나, 고민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감추지 말고 오히려 친한 사람에게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때 조심해야 하는 것은 내가 가진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말할 때는 내가 상대에게 위로를 받고자 하는 것인지 조언을 받고 싶은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라면 이야기에 앞서서 "내 말을 듣기만 해 줘. 나도 어떤 게 옳은지 알고 있는데 그저 투덜거리고 싶어서 그래"라고 말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보통 "알았어! 네가 쌓인 게 많은 것 같으니 나는 그냥 들어만 줄게!"하고 들어준다.
조언을 받고 싶은 것이라면 "잘 듣고 내가 한 행동이 맞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좋은 방법이 있는지 말해줘"라고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상대의 말을 잘 들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들은 내용을 절대 반박하려 들면 안 된다. 한국인의 나쁜 습성은 대화를 나눌 때 자신의 의견에 대한 이견을 못 견뎌한다는 것이다. 나부터도....
그러니까 친구의 조언에 "아, 그런 방법도 있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나도 좀 더 생각해 보고 한번 적용해 볼게! 정말 고마워!"하고 이야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의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다양한 문제들에 우리는 봉착한다. 그러한 문제를 푸는 데는 어떠한 정답이 있다기보다는 빠르게 가는 길과 느리게 가는 길이 있는 것 같다. 느리게 간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빠르게 간다고 해서 옳은 것도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문제를 만난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감추고 또 감추기보다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보여주고 위로받고, 조언받으며 앞을 보며 살아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