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Jan 30. 2024

따라쟁이 고양이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다.

 흑미가 냉장고 위를 섭렵하고 1,2주쯤 지났나.. 이제는 흑미와 함께 온이도 냉장고 위를 올라다 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득 온이의 목소리가 윗부분에서 나기 시작해서 위쪽을 올려다보았더니... 온이가 있는 게 아닌가.. 

온이도 천정까지 닿는 캣타워에 올랐다니는 것을 좋아하니 당연히 냉장고 위도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도 그동안은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는데 흑미가 올랐다니는 것을 몇 번인가 유심히 보더니 결국 온이도 한자리 차지하고 말았다. 


 



 평소 냉장고 위까지는 닦거나 청소하지 않아서 신문 같은 것들을 올려 두었었는데, 흑미가 올라다니고부터는 돗자리를 깔아 두었다. 흑미는 털이 검은색이라 먼지가 너무나 잘 보여서 특히 냉장고 위만 올라갔다오면 온몸이 먼지 투성이라 이름을 '흑미'가 아니라 '먼지'로 바꿔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냉장고 위가 생각보다 울퉁불퉁한 면이 많아서 돗자리가 올록볼록하게 되어 흑미가 그것을 또 자신의 스크래처인양 물어댔다. 이를... 어쩌나... 고민하다가 결국 돗자리 위에 작은 사이즈의 무릎담요 하나를 (위험하니 따라 하지 마세요) 올려주었다. 


 그 후로 온이가 올라간 것이다. 딱딱한 바닥에 담요를 깔아주는 것을 좋아하는 온이는 냉장고 위 담요 위가 자신의 자리인양 이제는 혼자도 올라가서 자리를 차지한다. 그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면서 살짝 입꼬리를 올릴 때가 있는데 그런 때는 내려오라고 핀잔을 주다가도 내 입꼬리 마저 올라간다. (이른바 온이 매직이다)


  왜 그동안은 올라가지 않던 냉장고 위를 갑자기 올라가게 되었을까. 흑미가 올라가서 그루밍하는 모습이 부러웠을까? 아니면 자신도 올라갈 수 있는지 시험해 봤더니 의외로 자리가 좋았다던가? 온이의 생각은 알 수 없지만, 순서상으로만 봐도 말괄량이 흑미를 따라한 것은 분명하다. 


 흑미가 장난감을 가지고 장난을 한다거나 꼬리 잡기를 한다거나 할 때는 따라 하지 않았던 온이지만, 이것 만큼은 온이가 따라한 것을 보아 애지간히 마음에 든 장소인가 보다 하고 추측할 뿐이다. 







 나도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따라 하고 있다거나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을 할 때도 그렇고, 일을 구할 때에도 그렇고,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와 만날 때도 그렇고 삶의 다양한 장면에서 그 장면을 먼저 만난 누군가를 따라 하고 모방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나한테 맞는 일인지 아닌지 장면에 나를 넣어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며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따라 하는 상대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심이 생겼다 싶으면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 한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보니 나는 의외로 금사빠?로 상대를 쉽게 믿어 버리는 성격이었다. 상대에게 너무나 빠르게 신뢰심을 느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따라가다가 보면 어느새 나만 뒤처져 있거나,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모르는 지경에 이른다. 자아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비참한 기분에 젖어들게 되고 높았었던 자존감도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을 하다가 이제는 상대를 믿기는 믿되, 그것이 나에게 맞는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을 오래 갖는 연습을 한다. 관련분야의 책을 많이 읽거나, 에세이, 소설을 계속 읽어 내려가면서 나에게 진정으로 맞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일이 해결이 되어있거나, 그 순간이 지나있어서 그 일이 꽤 작은 것이 되어있는 경우가 있다. 내가 성장한 것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말 그 일이 작은 것이었거나... 


 어찌 되었든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은 옳은 일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내가 너무 긴박한 상황이 되면 정말 주위는 둘러보지 않고 무작정 따라 하게 된다. 그것만이 구명줄인 것 마냥... 

그럴 때는 조금은 돌아가는 습관을 들여보자. 음악을 듣는다거나, 긴긴 잠을 잔다거나, 가벼운 만화책을 읽어도 좋다.  


 그리고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다시 생각해 보자. 내가 따라가도 될 일인지... 


온이가 조금만 더 뚱뚱하거나, 다리가 불편했거나,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냉장고 위에 따위는 올라가지 않았을 거지만, 그래도 올라갔다면 내려오기가 두려웠을 것이다. 또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다쳤을지도 모른다. 물론 온이는 내가 내려주겠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늘 그렇지는 않고, 게다가 누군가 도와줄 수 없는 일도 있다. 그러니, 무작정 누군가를 따라 하기보다는 조언은 얻되 내가 적용하기까지 좀 더 고민해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을 갈구하는 고양이 흑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