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바쁘게 뛰어야 하는 매일이지만 잠깐 멈추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와다다다다다"
"와다다다다다다"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검은 그림자가 방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그 뒤로 또다시 그보다 작은 그림자가 뛰어갔다. 단 1초 만에 벌어진 일... 뭔가 지나갔나??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며칠 전부터 아팠던 배를 문지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계는 벌써 나의 기상시간을 훨씬 지난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 집 부지런 쟁이들은 새벽 4시 30분쯤이 되면 나를 깨우고, 내가 잠시 일어났다가 다시 누우면 일어날 때까지 온갖 집안 투어를 하며 말썽을 부려댄다. 누가? 흑미가.
얌전한 양반인 온이는 조용히 타이르는 타입이다. "냥냥....냐아아아앙"하면서 귀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면 "아.. 너 배고프니?" 하며 밥을 주면 되지만 흑미는 온몸으로 갸릉갸릉하면서 나의 얼굴에 온갖 뽀뽀를 하더니 그래도 안 일어나면 슬슬 책장 위를 오르거나 책장에 손을 집어 넣어서 책을 하나씩 꺼내며 내 얼굴을 쳐다본다. 책 한 권 꺼내고 나 한 번 쳐다보고 '이래도 안 인나냐?', 또다시 책 한 권, 나 한 번...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야!!!! 엄마 자야지!!!"하고 일어나 흑미의 얼굴을 보면 치밀어 오른 짜증이 금세 없어진다. 그야말로 찐 사랑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렇게 이 아이들을 사랑했었던가..
꽤 사이가 좋아진 두 아이는 이렇게 나를 깨우는 일과를 완수하고 나면 이른바 <우다다>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듯 시동을 건다. 납작 엎드려서 엉덩이는 치켜들고 서로의 위치를 파악한다. 이것은 아마도 온이가 흑미에게 가르친 놀이인 것 같은데 평소 얌전한 얼굴을 하는 온이이기에 의외의 매력이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던가?? 냉장고에는 흑미가 먼저 올라갔지만, 우다다는 온이가 가르쳐 준 걸로~
안방에서 작은방으로, 작은 방에서 거실 한 구석으로, 거실 구석에서 냉장고 위로, 또다시 다른 작은 방으로 다시 안방으로, 이렇게 한 참을 털을 날리며 서로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다. 절대로 잡히지 않으리라는 결의가 얼굴에서 보인다.
그러다가 내가 외출 준비를 하며 조용해진 거실을 바라보니 두 아이는 이내 지친 듯이 함께 누워있다.
이미... 아침부터 뛰어다니니 힘들기도 하겠다 이 눔 들아.. 그냥 내가 누워있을 때나 그렇게 있지.. 마치 하루의 정해진 루틴을 깨듯이 이렇게 세 번째 루틴인 잠시 쉬기에 들어서 있는 아이들. 이렇게 보니 서로 다른 종에 서로 성격도 전혀 다르지만 이제는 정말 서로가 익숙한 모양이다.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아이들의 모습이 꽤 다정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침 식사를 하다가 뭔가 투닥투닥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두 아이가 마주 보고 앉아서 서로 냥냥펀치를 한 대씩 주고받다가 결국은 온이가 또 흑미를 때려눕히더니 한쪽 손을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하... 또 흑미가 온이를 시험했구나. 활발한 흑미는 온이 도발하기 천재이다. 몇 번 봐주느라 가만히 있으면 헤드락을 걸면서 온이를 움직이게 한다. 아마 온이가 지금의 먹성에 저 정도밖에 안 된 건 다 흑미 덕분인 듯하다.
우리도 다양한 일과로 매일을 열심히 살아간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돈을 벌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살고 있는 집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없다. 자녀를 돌보아야 하고, 가족과의 유대관계나 사회생활이나 친구들을 멀리 할 수도 없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하는 것은 가족 이외에 나를 잘 알아주고 보듬어 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필요하다. 동호회나 글쓰기 모임, 종교와 같은 것 말이다. 같은 생각을 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통해 나를 발전시키고 더욱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2,30대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나 혼자로 충분했고, 집안 일도 나 혼자, 혹은 가족 중에 누구라도 나를 조금 도와줄 수 있으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마음의 빈자리가 커져 공허함을 느끼게 되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나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나를 돌아보는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함을 느꼈다. 그러한 시간은 조용히 나를 다독이고, 하루를 생각하는 이른바 우다다 후의 쉬는 시간인 것이다. 그 시간이 없이 뛰다 보니 정말 뛰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듯한 번아웃 증상이 오기 시작했다.
일에서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렇게 돈을 번다고 한들 즐거움이 없었고, 내일도 치우고 청소해야 할 집안일을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러다가 번뜩, 나도 없어도 되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나쁜 생각까지 고개를 들기 시작하며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 24시간 너무나 바쁘고 힘든 일과 중에도 정말 오로지 나에 대해서만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구나, 그것도 여러 번... 잠시 여유를 갖고 커피를 마시거나 에세이를 읽거나 시를 한편 읽거나 하며 음미하듯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특히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소설책을 끊임없이 읽어 나가면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지만, 소설을 읽고, 그다음 또 소설을 읽다 보면 마음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소설과 소설 사이에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 시집 같은 것을 읽고 넘어가면 소설의 내용이 깊어지고 나의 일상에 어떻게 적용할지 느껴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음의 나의 일과를 해소할 힘과 의욕이 솟아났다.
아.. 이래서 고양이들이 격한 우다다 후에 잠시 쉬는구나... 나도 이제 우다다 후의 쉼을 꼭 챙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