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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 Oct 24. 2022

참 거창한 생각을 한다.           

2012.01.31

20대의 조미지가 살아간 기록.

불안과 희망이 한데 뭉친,

잔인하고 아름다운 시절의 편린.




Date : 2012.01.31

참 거창한 생각을 한다.

살아간다는 것


 얼마 전, 뷔페식으로 책을 읽는 습관에 의해서.. 에세이 한권, 소설 한권, 자기개발서 한권을 거의 동시에 읽고는 끝장까지 덮었다. 그 중에 두 권은 공지영 작가의 책이었고 나머지 한권은 김정운이라는 TV에서 자주 나오는 교수가 쓴 책이었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에서나 에세이에서 공통적으로 흐르는 감성이 지금의 나와 많이 통하는 느낌을 받는다. 책을 읽는 동안 그녀 특유의 표현법이 마을을 쓸고 간다. 마음에 느껴지는 아릿한 아픔에 대해서, 가슴속에 얇은 면도날이 지나갔다- 라던지. 인생은 고통 콘테스트가 아니니 너나, 누가 아픈지 겨룰 필요 없다던지.. 책을 읽다 멈춰 잠깐 쉼호흡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읽게끔 하는 깊은 공감. 그것이 공지영이라는 작가의 힘인 것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나에 대해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꽤 거창하게 들리는군. 살아가는 것에 생각한다는 것.



.....


 뭔가 사람들을 쫓고 있다.그게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고서 그저 냅다 달린다. 안달이 난 사람들은 서로를 밟는다. 밟고 치이고 쓸려가는 사이에 있다 보면 어느새 만신창이가 되어서 제 스스로 누군지 모른다 한다. 해저의 끝에 처박혀 내 주위에 도대체 뭐가 남은거지.. 라며 절망하기 전까지는 브레이크 고장난 트럭처럼, 눈 양 옆을 가린 말처럼 그저 속도가 생명인 것처럼 군다. 속도를 내서, 누구보다 빨리, 높은 고지위에 남들만큼 버젓이, 그렇게 내달려 얻어야 하는 한 단어. ‘성공’. 그렇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성공이라는 단어에 중독되었다. 


 나 역시, 열심히! 끝까지! 미칠듯이! 더! 더욱 더! 더..더.. 더!!!! 를 외치며, (그게 마음 속 외침이기만 하면 다행. 주위 사람에게 강요까지 하며..) 폭주 기관차와 다름없이 스스로를 떠밀었다. 조금이라도 정체되어 남들 보다 단 1mm라도 처진다고 느껴지면 머리를 쥐어짜며 괴로워한다. 난 안 돼! 너무 나태해!!! 잠시라도 휴식을 갖는 것은 죄의식이 동반된다. 내가 이렇게 손을 놓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난 아직 너무 부족한데, 언제 원하는 곳까지 가게 될지 아직 불안하기만한데.. 


 자, 이러다가 벽을 하나 만나게 된다. 나태한 이들보다 제대로 살고 있다는 우월감만이 스스로의 뼈대를 이뤄서 자만감에 디룩디룩 살이 쪘을 그때 쯤, 지나가는 풍경에 있을 법한ㅡ 벽이라도 하기에도 뭣한, 아주 작은 벽을 만나게 되었다. 그 벽은 이름까지 아주 촌스럽다. 이름하여 ‘행복’. 내게 행복이라는 이름은 정말 너무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워서, 그까이꺼! ‘성공’ 얻으면 다 딸려오는 잡지책 부록 같은 것 아냐?하며 천대하고 아주 미련없이 지나갔다.


 그 시절, 나는 내 스스로가 완벽했다. 난 재능이 있고, 젊고, 건강하고, 늘 열심히 행동했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서 지켜줬다. 분에 넘치게 행복함을 만끽하던 시절이었음을.. 지금이야 알았지만, 그 때의 나는 늘 불행하다를 입에 꿰고 살았다. 마치 피에 굶주려서 눈에 빨간불을 켜고 다니는 영화 속의 뱀파이어 같다고 하면 너무 과장되었을까. 


“사랑해.” “네가 최고야.” “네가 필요해.” 라는 말이 절실했다. 그것이 얻어지지 않으면, 혹시 거부라도 당한다 느끼면, 몸에 필수로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부족해 죽어가는 환자처럼 가슴이 말라버려서 고통스러웠다. 이럴 바에 살 필요가 없어. 난 희망이 없어. 라는 파괴적인 생각이 차오르며 나라는 인격 자체가 벼랑 끝에 몰리는 시간이 올 때마다 나는 더욱 더 집착했다. ‘성공’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에. 


 휘몰아치고 쓸리고 베여나가는 시간이 지나자-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고, 완전 젊은 것은 아닌 것 같고, 엄청 건강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게 열심히 사는지는 더욱 모르겠고, 누군가 옆에서 나를 지켜주기 보다 혼자 버티며 살게 되었다. 왜 일까. 나는 분명 열심히 해왔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지? 난 왜 이렇게 변했지? 이건 내가 아닌데..


 고민하고 좌절해서 못 견디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많아지자, 술을 마시고 못 된 짓을 일삼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구원을 바랬다. 술에 쪄든 우울함의 구렁텅이에 허우적대며 피폐하게 멍든 일상이 계속되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오히려 힘들게 느껴지는 지경에 이른다. 얘기해 봤자 다 이해해주지 못하니까. 어차피 겉으로만 위로해주는 거니까. 처음부터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이런 생각들 때문에 조금씩ㅡ 선택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고는 깨닫는다. 그제서야 진정으로 혼자서 감내해야할 ‘고독’이라는 단어를 손에 들게 되었음을.


‘외로움’에 대비해서 ‘고독’은, 상징은 비슷하나ㅡ 느껴지는 정서가 다르다. 이는 공지영 작가가 말한 바와 같았다. ‘외로움’은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은 가족이 바글거리는 명절에도 느끼는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한 이불 속에서도 겪는 것이고, 혼자 쓸쓸히 자취방에 몸살로 앓아누웠을 때도 느끼는, 사람이 갖는 감각과도 같은 것이다.


‘고독’은 다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외로움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난 뒤에는 나름 ‘고독’을 즐기고 아끼는 방법 또한 터득하게 되었다. 다른 약속을 하지 않고 집에서 혼자 드라마나 영화를 다운 받아 좋아하는 편의점 치킨 한 조각을 뜯으며 캔맥주를 홀짝거린다거나.. 노곤한 몸을 뜨끈한 물로 개운하게 씻어 내린 후에 침대 속으로 들어가 머리맡에 있는 읽다만 책 중에 한 권을 골라 읽는다거나 하며, 문득 생각나는 담배를 피우려 새벽녘 창가에 고개를 내밀고 서늘한 공기를 마시는 것.. 그러다가 저 멀리 머릿속에 우겨넣어진 한 두가지 추억을 꺼내서 곰곰이 되새겨보는 것.. 나는 이런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고, 나에게 ‘외로움’이라는 아픈 과제를 꽤 영리하게 풀어내는 방법이 되었다. 


 고독을 알게 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외로움을 나누는 것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사람에게 아프게 집착하고 고통 받는 관계보다, 편하고 기분 좋은 관계를 만들 수가 있었다. 분명 예전에 같은 환경 속에서 내가 간과하고 넘어갔던 아주 작고 실낱같은 감각이 지금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서 나라는 존재를 근본부터 서포트해주고 있었다.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작고 작은 벽. ‘행복’이라는 보잘 것 없었던 단어가...



.....


‘노는만큼 성공한다’ 라는 책의 저자 김정운 교수가 말하길, ‘결과적인 행복’이 아니라 ‘과정적인 행복’을 추구하라 한다. 결과를 창출하기 위한 목표는 언제든지 변형 가능한 유기적인 것이다. 지금 30평 아파트를 갖는 것이 목표라면 30평 짜리 아파트라는 결과는 또 다른 45평짜리 아파트가 보이도록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만 행복을 성취하려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남들이 원하는 ‘성공’ 이라는 것이라면, 성공이란 것이 얼마나 바보같이 밑바닥 구멍 난 항아리에 물 붓는 격일까. 꿈을 갖고 목표를 갖되, 그것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찾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속에서 고독을 감내해, 스스로의 마음을 어여쁘게 돌아봐 주어야 한다. 

 나는 현재 꽤나 나태하게 살 고 있는 것이 맞다. 그렇게 살면 남들 사는 만큼 살지도 못 한다! 라는 협박(?)도 듣는다. 물론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걱정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것 보다 내게는 내일 하루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보낼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하니까. 어떻게 하면 즐겁게 일할지, 어떻게 하면 즐겁게 놀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즐겁게 먹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즐겁게 쉴 수 있을지.. 


 혹여 나쁜 일이 생겨서 기분이 최악으로 구겨진대도, 스스로가 행복할 거리를 찾는 연습이 되어있다면, 좀 심하다- 싶은 역경이 찾아와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가 지나면 그 다음날이 오면서 살아지는 거니까ㅡ 되도록이면 재미지게 살아가는게 좋지 않을까. 누군가 서로에게 손가락질 하며 비난 할 수 없는 스스로의 인생이다. 이왕 십자가를 가지고 등반을 해야 하는 거라면, 콧노래 흥얼거리며 걷도록 하자. 눈 감을 때 멋쩍게 웃으며, “참.. 재밌었다.” 할 수 있도록.



.....



 해서.. 참 거창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에 생각한다는 것 말이다. 어쨌든 지금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새벽이 왔다. 좀 더 일찍 잠들고 싶었지만... 뭐, 어쩔 수 없다. 내일 약속에 지각을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게 된데도ㅡ 흠, 어쩔 수 없다. 한심하다고 생각하나? 그것도 역시 어쩔 수 없다. 지금 나는 기분이 매우 좋고, 그래서 행복하다. 그게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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