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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ive tongue May 17. 2022

남겨진 자의 고통

레지던트 일기

다르게 대처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결과가 달라졌을까.


가슴 한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공허함과 슬픔이 동시에 몰려왔다. 구멍의 크기는 매일 점점 더 커져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시려다. 


구멍을 메꾸기 위해 며칠 동안 슬픈 노래를 찾아들었다. 알고 있는 모든 이별 노래들을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그리고 계속 눈물을 흘렸다. 소리 내면서 울었다. 마치 우는 게 지금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인 것처럼 하루 종일 울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혼자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의학적으로 이걸 grief 혹은 초기 우울 증세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2주 정도 지나자 아픔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구멍의 크기도 많이 줄어들었다. 더는 그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얼굴을 떠올리지도 않았다. 내가 따로 처리해야 할 서류 같은 것도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그들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인생이 덧없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환자들이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날 때다. 주위를 둘러보고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우리는 그들의 아픔과 문제를 알아볼 수 있다.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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