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온기에 대하여

가족이 된다는 건, 내 삶의 속도를 맞추는 일

by 병아리 트레일러너

이제는 생활의 일부가 된 트레일러닝을 하다 보면, 아주 가끔 타인의 반려견과 밀도 있게 교감하는 순간이 있다. 어떤 아이는 신기하게도 먼저 다가와 내 곁에 앉아 가만히 만져주기를 기다리고, 어떤 아이는 주인과 발맞춰 가면서도 뒤따라가는 나를 커다란 눈망울로 한참이나 바라본다.

그 다정한 눈빛은 마치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힘들죠? 조금 쉬어가며 하세요. 나도 당신과 함께 걷고 싶어요.” 어쩌면 나의 기분 좋은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반려견은 인간의 감정을 온전히 수용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그들은 사람과 곁을 나누며 살아가기에 가장 최적화된 존재인지도 모른다.

대개는 혼자만의 트레일 워킹과 러닝을 즐기는 나지만, 그럴 때면 언젠가 내 반려견과 함께 신나게 숲길을 달리는 상상을 하곤 한다. 지칠 때면 서로에게 물을 건네고,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르며 나란히 달린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하지만 나는 이 달콤한 상상을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내게 입양이란 단순히 동물을 들이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안다. 아직은 그 아이에게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내어줄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을.

일을 조금 더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나의 하루 중 꽤 많은 조각을 기꺼이 그 아이의 몫으로 떼어줄 수 있을 때. 그때가 아마 우리 가족의 적기일 것이다. 아쉽지만 지금의 멈춤은, 미래에 만날 사랑스러운 가족을 향한 가장 책임감 있는 기다림이자 약속이다.


사실 반려견을 향한 나의 이런 신중함은 20대 시절의 한 조각 기억에서 기인한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당시, 인연이 닿아 잉글리시 코커스패니얼 남매를 입양하게 되었다. 솜뭉치 같은 새끼강아지들을 마주한 순간 나는 단숨에 사랑에 빠졌다. 퇴근 시간이 무섭게 집으로 달려갔고, 수시로 동물병원을 드나들며 열혈 엄마처럼 정성을 쏟았다.

그 아이들이 내게 준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조건 없는 사랑' 그 자체였다. 야근을 하고 늦게 귀가해도 도어락 소리에 가장 먼저 달려 나와 나를 반겨주는 존재. 나의 어떤 단점도 상관없이, 그저 '나'라는 이유만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 주던 아이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에서 두 마리를 다 감당하기 어려워 암컷 아이를 지인의 집으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 아빠의 품에서 떠나지 않으려 낑낑대던 그 작은 몸짓을 보며 나는 코끝이 찡해지는 뭉클함을 참아야 했다.

이별은 남겨진 아이에게도 깊은 흉터를 남겼다. 홀로 남은 수컷 강아지는 며칠간 기운 없이 있었고, 그 좋아하던 간식조차 입에 대지 않았다. 여자 형제을 잃은 슬픔에 잠긴 모습을 보며, 저 아이들도 사람처럼 이별의 고통이나, 감정은 다 느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여하튼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곧 덩치가 너무 커진 수컷도 아파트에서 활발하게 키워야 하는 코코 스페니얼은 부모님께서 키우기 힘들다고 하셔서 남은 한 마리도 몇 개월 후에 일산에 주택에 사시는 아빠친구분께 보내게 되었다. 그때 사실, 부모님을 많이 원망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신중하게 결정하셔서 이런 번복을 안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갑자기 사라진 그 빈자리가 한동안 꽤 크게 느껴졌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지금은 이렇게 뜸을 들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다시 반려견을 입양할 땐 펫샵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쉘터 같은 곳에서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한 동료가 저멘 쉐퍼드 2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우리 집에서 한 시간 떨어진 쉘터에서 입양했다고 했었다. 그래서 당시에 위치랑 전화번호도 저장해 놓았었다. 이 정도면 나 완전히 준비된 반려인 아닌가? 괜히 나혼자 싱긋 웃음이 난다.


지금은 혼자 숲길을 달리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나란히 발맞춰 달릴 그 아이를 기다린다. 그때는 절대 서두르지도, 도중에 손을 놓지도 않을 것이다. 가족이 된다는 건, 결국 내 삶의 속도를 온전히 그 아이에게 맞추는 일임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알기에. 앞으로 몇년안에 새로 들어올 우리의 가족 구성원을 상상해보며 다시 한번 즐겁게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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