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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우 Sep 07. 2022

미국에서의 나를 마주하며

대학 생활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교환학생에 관련된 소식을 듣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공지하는 교환학생 모집 글, 주변 사람들의 교환학생 후기 등등.. 저 또한 새내기 때부터 이런 요소들을 여러 번 접했고, 자연스레 언젠가는 교환학생을 가봐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대충 2학년이나 3학년 때쯤 가면 되겠거니 하던 제 안일한 생각은 코로나로 인해 무너졌지만, 외국의 코로나 상황이 점차 나아지고 다시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는 것을 보며 급하게 교환학생에 지원했습니다. 

교환학생 준비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남들은 한 학기 전부터 시작하는 준비과정을 교환학생 설명회 공지가 뜬 당일부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도 설명회를 들은 적은 있어서 교환학생 선발에 학점(석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지원할 때 필요한 최소 조건인 영어 시험 점수가 없었습니다. 급하게 시험 준비를 하고 late fee까지 내가며 가장 가까운 시험 날짜를 잡은 덕분에 교환학생 모집 기간 내에 영어 성적을 받을 수 있었고, 다행히 원하는 학교에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교환학생으로 선발은 됐지만, 출국 전까지 교환학생을 간다는 것 자체가 잘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비자 문제를 처리하고, 미리 예방접종을 받고, 파견교에서 들을 과목을 찾아보는 등 준비 절차는 많았지만 정작 교환학생에서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나 어떤 것을 성취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학업 때문에 교환학생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섣불리 무언가를 기대했다가 이루지 못하면 좌절할까 봐 아예 상상을 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것을 주로 목표로 삼는지 몰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저는 좋아하는 밴드 콘서트 가야지, 설렁설렁 유학 준비도 해야지 등의 단순한 생각만을 가지고 출국을 하게 됐습니다.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제가 마주한 첫 번째 난관은 영어였습니다. 미국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이 컸습니다. 한국에서 학교 영어 수업을 들을 때는 다들 영어를 배워가는 단계이기도 하고 모두가 완벽하지 않기에 부담이 덜했지만, 미국에서는 현지 언어를 조금이라도 틀리면 실수가 굉장히 부각되어 보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일상적인 과정에서도 항상 긴장한 상태였고, 그로 인해 평소보다 더 말을 더듬는 등 ‘완벽한’ 영어에서 더욱 멀어지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세계 각국에서 온 교환학생들과 교류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영어에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지만 당장 어색함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서 아무렇게나 말을 했고, 다행히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당연히 상대방이 잘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시 한번 말해주면 문제가 없었고, 반대로 제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전혀 답답해하지 않고 다시 말해주는 모습을 보고 소위 영어 듣기 지문처럼 물 흐르듯이 대화가 이루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특히 말을 하고 나서 문법이 틀린 것을 스스로 느꼈을 때도 지적하거나 비웃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영어는 자신감이 다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는데, 이전에는 틀린 영어를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그다지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지 생활을 해보고 나니 각종 문법을 신경 쓰다가 지레 겁먹고 말하기를 무서워하기보다는 일단 뱉어보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자신 있게 말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전혀 걱정하지 않았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인사말과 같은 대화 문화입니다. 누가 How are you라고 물어보면 긍정적인 형용사로 대답하고 다시 How are you라고 물어보기, 마트에서 계산을 하고 계산원이 Have a good one이라고 하면 You too라고 답하기 (왠지는 모르겠지만 저 말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께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등등 텍스트로 보면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막상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저런 말들에 어떤 대답이 자연스러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던 당시에는 이런 것들을 미리 알았어야 어색한 상황들을 덜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며 후회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현지인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직접 보고 배우는 것이야말로 타지 생활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어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했더니 교환학생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지 않은 제 업보가 그새 돌아왔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욕심이 너무 많았습니다. 랩 인턴을 하며 유학 준비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친목을 다지고, 덕질도 제대로 해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초반에는 유학 준비 쪽에 조금 더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매주 한 번씩은 밤을 새워가며 논문을 읽었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도서관도 자주 다녔습니다. 그렇게 학기의 반이 지나가자 조금 공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놀러 다니는데 난 왜 여기까지 와서 힘들게 살고 있는 거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고, 학교 주변 관광지도 몇 곳 가보지 못한 것을 알고 나니 시간을 헛되게 보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굉장히 애매한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놀려고 해도 마음 한편에 부담을 느꼈고, 또 공부하려고 해도 개인적인 문제들로 잘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위 사례에서 제 실수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한 것과 주변에 너무 휘둘린 것. 이렇게 원인이 잘 보이는데도 그때는 왜 해결할 생각을 못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적응하는 과정이었다고 명하기에는 그 긴 시간이 너무 아깝기도 하고, 준비를 잘 했다면 방지할 수 있었을 것 같아 후회가 됩니다. 이런 경험들 덕분에 제가 더 성장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배운 건 맞지만, 혹시 교환학생을 생각하고 계신 다른 분들이 있다면 저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런 교훈을 꼭 타지에서 배울 필요는 없으니까요!


너무 힘들었던 일화만 소개했던 것 같아서 조금 덧붙이자면, 교환학생 기간 동안 좋은 추억들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처음으로 국제 학회에도 참석해 보고, 영화에서나 보던 미국 파티도 즐겨보고, 햄버거도 상표별로 섭렵했습니다. 종강 후에는 덕질도 아쉽지 않게 즐겼습니다. 총 4개의 테마파크, 4번의 콘서트, 2번의 브로드웨이 공연을 봤고, 하나하나 다 감상을 쓸 순 없지만 모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특히 아직 한국에 개봉하지 않은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영화는 제게 올해 최고의 영화로 남아있습니다. 친구들과 동부 서부 가리지 않고 여러 도시로 여행한 것도 정말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거창한 경험들을 제외하더라도 친구들과 함께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날씨 좋은 날에 캠퍼스 산책을 하는 등 소소한 일들도 모두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또 미국에서 수업을 듣는 것도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학기 초에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교환학생이라고 소개하면 거의 항상 들었던 질문이 있는데, 바로 한국과 미국의 수업이 어떻게 다른지 물어보는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고정적으로 했던 답변은 교수님과 학생 모두 상당한 열정을 갖고 수업에 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지식을 단편적으로 배운 느낌이라 개념을 제시하면 그와 관련된 식이나 원리를 줄줄 읊을 수는 있었지만 정작 그 개념이 왜 나온 건지, 왜 중요한지, 다른 개념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명확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교수님들께서 단순히 책에 있는 지식을 순서대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큰 그림에 맞추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어떤 방법을 썼는지, 이 방법의 특징은 어떤 것이 있는지, 어떤 부분을 보완해서 실생활에 쓰고 있는지 등 사고의 흐름에 맞게 설명해 주시니 한 과목에서 다루는 내용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귀국한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는 교환학생 생활을 떠올리는 것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제가 싫어했던 것들, 실수했던 것들, 부족했던 것들만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좋은 기억이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웠던 것들만 유독 떠올라서 소위 말하는 ‘이불킥’을 여러 번 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여러 사람들에게 제가 교환학생 기간 동안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고 정리해 본 결과 이제는 그때의 저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순간들도 잊고 피하기보다는 그로부터 배우고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행복했던 기억들은 더욱 소중히 여기려고 하고 있고요!

쓰다 보니 교환학생 기간 동안 힘들었던 점들을 많이 쓴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환학생은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미국에서 시도하는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고, 제가 더 성장하는 발판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교환학생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제가 경험한 것보다 훨씬 행복하고 재밌는 기억을 많이 만들고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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