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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우 Sep 16. 2022

로잔에서 보내는 편지

익명의 수신자에게


첫 번째 편지_


안녕하세요,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로잔에 온 지 벌써 어언 3개월이 흘러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남은 시간이 여기서 보낸 시간보다 더 짧아지는 시점에 이르러 있어요. 친구들과 혹은 혼자서 훌쩍 떠났던 여행을 통해, 학교와 연구실에서의 생활을 통해 그리고 이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친구들과 어울리며 얻은 수많은 경험과 기분 좋은 기억들을 꾹꾹 눌러담아 지난 3개월의 추억을 채워 넣었습니다. 로잔에서의 생활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한국에 있을 때와 비교해 새삼스레 달라진 제 모습에 가끔 스스로도 놀라곤 합니다. 이제는 귀국 날짜까지 남은 하루들을 헤아리며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네요.


로잔에 오게 된 계기는 사실 별 거 없습니다. 교환학생을 가는 것은 제 평생의 버킷리스트였고 교환 시기가 코로나 때문에 불투명해지자 8학기를 모두 이수하고 졸업을 미뤄 초과학기에 가는 것으로 선회했습니다. 2021년 여름, 막상 지망 학교의 우선 순위를 정해 지원하려니 막막했어요. 전력전자를 공부하고 있던 저는 전력전자 연구실이 있는 학교들을 위주로 조사하던 중 스위스 레만호 주변의 작은 도시인 로잔에 위치한 로잔 공대(École Polytechnique Fédérale de Lausanne, EPFL)를 발견했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잘은 몰랐지만 대학교 순위를 보니 좋아 보이더라구요. 거기에 로잔을 검색했더니 나오는 구글 이미지에 입이 떡 벌어지고. 아, 원래는 독일을 가려고 했습니다, 물가가 싸서요. 그렇게 1지망으로 지원한 로잔 공대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2월 6일 새벽에 출국했습니다. 바로 로잔으로 오진 않았고, 또다른 평생의 버킷리스트였던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 보기'를 이루기 위해 뜻이 통했던 친구들과 아이슬란드로 향했습니다. 춤추는 오로라를 보느라고 거의 두 시간을 눈밭에서 친구들과 뛰어다녔네요. 10여일간의 즐거웠던 아이슬란드 여행을 마치고 로잔에는 2월 16일에 도착했습니다. 그 날, 저는 경유지에서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 기숙사 체크인을 미리 신청하지 않았고 사무실은 이미 닫았다는 걸 깨닫습니다. 운좋게도 자기 방에서 재워주겠다는 마음씨 좋은 교환학생 친구 덕분에 노숙자 신세는 면했답니다. 이튿날 아침 체크인 하고 나서 제 방이 생기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더라구요! 첫 2주간은 정말로 바빴습니다. 각종 생필품을 샀고, 기숙사 친구들과 인사를 했고, 은행 계좌를 만들었고, 각종 서류를 신청하러 다녔고, 로잔에 교환 온 다른 한국인 친구들과 첫 만남을 가졌고, 그리고 2월 21일부터 개강을 해서 학교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출국 전에 미리 연락드렸던 로잔 공대 교수님과 면담도 했습니다. 갑자기 웬 교수님과의 면담이냐구요? 이 얘기를 이제 좀 더 자세히 해보려고 해요.


출국 전 석사 진학 예정인 연구실의 담당 교수님과 면담을 가졌습니다. 로잔 공대로 교환을 간다고 말씀드리니 마침 아는 교수님이 있다며, 원한다면 연결해 줄 수 있다고 흔쾌히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미리 메일로 로잔 공대의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고 연구 참여 과목을 수강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기로 했습니다. 개강 다음 날 처음으로 방문한 학교에서 연구실 구성원들과 인사하고 실험실을 한번 슥 둘러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주제 중에 프로젝트를 진행할 주제를 골라야 했는데, 너무 아무 생각이 없이 갔던 관계로 그렇게 내키지는 않지만-경험이 있어 나름 자신은 있었던-하드웨어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은 연구실 분위기는 어떤지 살펴봤어요. 이튿날 연구실에 갔더니 다같이 둘러앉아 랩미팅을 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교수님과 박사과정생들이 다같이 기차 타고 스키장에 갈 계획을 세우는 것 같더라구요. 지금의 저라면 끼워 달라고 했겠지만 그 당시에는 눈치만 보고 있었네요. 한편 연구실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박사과정생 중 정말 운 좋게도 (혹은 세상이 그리도 좁은 탓인지) 서울대학교의 전력 연구실에서 석사를 했고 현재 이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가 있어 카카오톡 연락처도(!) 교환했습니다. 연구실은 두 층으로 되어 있어 아래층에 실험실이, 위층에 컴퓨터들이 놓인 연구실이 있습니다. 한국의 흔한 대학원생실과 달리 칸막이는 없어요. 위층에서 매일 마주치는 석사, 박사 친구들과 말을 트고 종종 점심을 같이 먹기 시작했고, 아래층 실험실에서 납땜을 하다 친해진 또 다른 석사 친구와는 주말에 피맥도 했습니다. 연구실 구성원들이 모두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 스스로가 참 좋은 운을 타고났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네요.


하드웨어 프로젝트의 목표는 이미 누군가가 설계해 놓은 PCB 보드를 테스트하고 개선하는 것이었습니다. 질문에 서툴렀던 터라 그리고 '알아서 잘 하는' 사람이고 싶은 욕심에 물어보지 않고 납땜도 테스트도 해 보려고 했는데, 결국 실수 끝에 조금이라도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질문을 하는 게 최선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교수님이 "Don't be shy," 라고 말씀하셨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궁금한 게 있으면 차곡차곡 모아서 달려갑니다.)  연구실 분위기는 매우 수평적입니다. 랩미팅을 할 때에는 날카로운 질문을 거의 꽂다시피 하시는 교수님이지만 평소에는 농담도 재치있게 잘 하시고, 연구실 사람들과 다같이 자전거 여행도 가곤 하시더라구요. 출퇴근도 자유롭습니다. 물론 자세한 연구의 강도나 더 자세한 것들까지는 모르고, 살펴본 사례가 이 연구실밖에 없긴 하지만, 확실히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연구실 생활에도, 로잔 생활에도 점점 안정을 찾으며 적응해 나갔어요.


로잔 공대와 바로 옆에 붙어있는 인문/사회대학인 로잔대에서는 공동으로 교환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열곤 했는데, 몇몇 이벤트에 참여하며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첫 이벤트는 스키/보드 초보자를 위한 강습 프로그램이었어요. 알프스 산맥에 있는 스키장에서 인생 처음으로 보드를 배워보았고 아주 많이 굴렀습니다. 구르다 보니 옆에서 같이 구르고 있는 친구들이랑 왠지 모를 유대감이 생기더라구요. 많은 교환학생 이벤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인터내셔널 디너 한국 편입니다. 신청할 당시에는 프로그램 취지를 잘못 이해해서 각 나라의 학생들이 요리를 해서 모두가 각국의 음식을 나눠먹는 건 줄 알고 한국인들을 모두 모아 갔는데, 알고 보니 한 특정 국가의 음식으로 테마를 정해 모두와 나누는 것이더라구요. 30인분의 계란찜, 해물파전, 떡볶이, 보쌈과 무말랭이, 호떡을 만들어 대접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해냈어요! 외국인 친구들한테 소맥 말아먹는 법도 알려줬답니다. 이 날 한국으로 다음 학기에 교환 온다는 클라라와 처음 만났습니다. 우연히 같은 기숙사에 살아 서로 언어도 알려주고 저녁밥도 종종 같이 해먹으며 꽤나 애틋한 사이가 되었어요. 아직 종강하려면 2주 정도 남았는데, 얼른 종강해서 호숫가에서 친구들이랑 다같이 바베큐 파티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편지_


안녕하세요, 두 번째 편지가 늦었습니다. 첫 번째 편지 이후로 3개월이라는 시간이 또 쏜살같이 지나가 어느새 그렇게도 멀어 보였던 귀국을 3일 앞두고 있습니다.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날들은 로잔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인연 클라라와 함께 클라라의 고향인 스위스의 한 시골 마을에서 보냈습니다. 멀리 한국으로 긴 여행을 떠나기 전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친구를 보니 이제서야 이 생활이 마침내 끝에 다다랐다는 사실이 조금 실감이 났어요. 다시 한국으로, 제가 살던 삶 속으로, 매일같이 혹은 때때로 마주하던 나의 사람들 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니 마치 그간 길고 행복한 꿈을 꾸다 이제 슬슬 깨어날 준비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드네요. 이곳에서 지내며 많이 달라진 제가 돌아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도 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저를 믿어 보려고 합니다.


로잔 생활을 하며 스스로 느끼기에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내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시도해 보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거리낌없이 길을 물어보고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흔히들 삶의 목표라고 말하는 행복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구요. 무엇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 순간부터는 제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의 요소들을 하나씩 천천히 찾아 나가보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한국과는 다른 문화를, 기후를, 생활 습관을 가진 장소에 적응해 나가며 세상을 보는 넓은 눈을 키웠습니다. 스위스의 슈퍼마켓은 대부분 오후 7시면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열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가정집에는 에어컨이 존재하지 않으며 창문에 방충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처리도 느립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큰 문제 없이, 불평 없이 잘 살아 가더라구요. 어쩌면 우리는, 편안함을 추구하여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다보니, 조금의 불편함도 참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한 쪽이 반드시 옳다고는 말 할 수 없지만, 조금은 불편하게, 그렇지만 느긋하게 여유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저는 그것을 꽤 마음에 들어 했던 것 같습니다.


교환학생 막바지에 이르러 으레 받았던 질문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How did you like it?" 이었습니다. 길고도 짧은, 꿈같은 시간이었고, 누군가 이곳에 다시 돌아올 거냐고 묻는다면 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온 날들로부터 잠시 떨어져, 호숫가에서 수영을 하고 책을 읽고, 친구들과 저녁을 만들어 먹고 밤 산책을 하고 잔디 위에 누워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던 날들을 기억할 겁니다. 로잔을, 스위스를 또 하나의 home으로 느끼게 해 주었던 많은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보낸 찰나의 순간들을 추억하며 살아갈 거에요. 다시 만날 때까지, Au revoir, Lausan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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