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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봄 Jan 17. 2024

꼼꼼하게 그림책 보기 6

『달구지를 끌고』를 보고

『달구지를 끌고』 (도날드 홀 글. 바바라 쿠니 그림. 주영아 옮김/비룡소/1997)는  미 북동부 뉴햄프셔주 작은 시골 마을에 오랫동안 구전되어 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시에 그림을 더한 책이다.     

 

이야기는 일 년 내내 가족 모두가 기르고 만든 것 가운데 내다 팔 것들을 달구지에 실으면서 시작된다. 농부가 깎아 둔 양털 한 자루, 양털로 털실을 만들어 아내가 짠 숄, 농부의 딸이 짠 벙어리장갑 다섯 켤레, 아마 가족들에게 선물할 장갑은 따로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농부 아들이 부엌칼로 깎아 만든 자작나무 빗자루, 그 밖에 양초와 리넨 천, 널빤지, 감자, 사과, 양배추, 꿀, 메이플 시럽, 그리고 뒷마당에서 아이들이 주워 모아 둔 거위 깃털까지.            

농부가 달구지를 끌고 열흘이나 걸어서 도착한 강 하구에 있는 포츠머스. 농부는 먼 길을 함께 온 소에게 물을 먹인다. 마을 시장에서 농부는 가져온 물건을 전부 다 판다. 심지어 사과를 담아 간 통과 감자를 담아간 자루, 달구지도, 가족과 오랜 시간 함께 한 소도, 소의 멍에와 고삐도 다 판다. 소를 팔기 전에는 소에게 입맞춤을 하며 그간의 고마움과 헤어짐을 달랜다.     

모든 것을 팔아 받은 돈으로 농부는 아내가 쓸 무쇠솥, 딸에게 줄 수예 바늘, 아들에게 줄 주머니칼, 가족 모두 함께 먹을 앵두 맛 박하사탕을 산다.               

집으로 돌아온 농부는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새 무쇠솥에 저녁밥을 짓는 아내를 바라보고 수예 바늘로 수놓는 딸과 주머니칼로 나무를 깎는 아들과 함께 편안한 밤을 맞이한다.     

그리고 새로운 일 년이 시작된다. 영국에서 온 수예 바늘을 아빠에게 받은 딸은 지난해와 달리 더 아름다운 수를 놓을 것이다. 포츠머스 시장에서 농부의 딸이 수놓은 리넨 천을 사게 될 누군가는 그 아름다움에 감탄할 테고. 농부의 아들은 지난 해 보다 더 튼튼한 빗자루를 만들 것이고 이제는 부엌칼을 쓰지 않아도 되니 빗자루 손잡이에 그 만의 독특한 무늬를 새겨 넣을지도 모른다. 농부의 아이들은 일하는 삶을 자연스레 익힌다. 아마도 금실 좋은 이 부부는 셋째를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표지는 농부와 소와 달구지를 담았다. 속표지에 달구지를 끌고 떠나는 남편을 집 앞에서 배웅하는 아내의 모습이 인상 깊다. 남편을 먼 길 떠나보내는 걱정과 떠나는 남편에게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며 작은 액자 구성으로 오래된 가족사진을 보는 듯하다. 대체로 그림 한 면에, 글 한 면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열흘이나 걸리는 여정을 보여주는 장면은 두 면을 가로로 길게 연결하여 먼 길을 가는 모습을 잘 담았고 돌아오는 길도 같은 화면 구성으로 여러 마을과 여러 밤을 보내며 돌아오는 농부의 모습을 잘 살렸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시간이 흘렀음을 달라진 나무들과 들판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저녁노을과 저 멀리 언덕 위에 집이 보이는 장면과 그 길을 떠날 때와 다름없는 걸음걸이로 가는 농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농부가 사는 시골과 달리 큰 도시인 포츠머스에 도착하는 장면은 한 면과 옆면의 절반까지 사용해서 보다 넓고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 온 가족이 사과나무꽃이 만발한 어느 날, 일하다 멈춘 듯한 장면도 2/3를 그림으로 그려 저 멀리 집 뒤편 제법 큰 송아지의 모습까지 담았다. 이 행복한 순간은 올해도 작년과 같이 변함없다는 안정감을 독자에게 준다. 맨 마지막 거위들이 나오는 장면은 작은 화면으로 구성하여 마치 영화의 보너스 장면과 같은 느낌이다.     

이 책의 그림은 글의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글에 없는 내용을 그림에서 읽을 수 있게 해서 내용을 더욱 심화시키고 확장시킨다. 또한, 화면의 구성을 적절히 조절하여 짧지 않은 이야기를 적당한 호흡으로 잘 따라가게 한다.         

      

달구지에는 농부 가족의 삶이 실려 있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팔기 위해서 기르거나 만들지 않으며 쓰고 남은 약간의 것들을 판다. 그리고 송아지가 있으니 소를 파는 것처럼 결코 필요 이상의 것을 소유하지 않는다. 소박하고 순수한 삶이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지 않고 너무 많이 생산하거나 소비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200년 전 미국 북동부에 살던 농부만이 가져야 하는 삶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구전되었다는 이 이야기는 조상들의 삶을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그대로 전했다. 자랑하거나 교훈을 주려 한 것도 아니다. 이것이 이야기와 시와 노래의 참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20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서 읽는 이도 감흥을 느끼며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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