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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Feb 18. 2023

미움받을 용기

익숙한 책 제목이다.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큰 사랑을 받았기에 후속작까지 출판하며 연달아 흥행을 이어갔다.


사람들이 무언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째는 깊은 공감이고, 두 번째는 깊은 혐오다.

전혀 방향이 다른 이유지만 관심이라는 결값은 같다.

그리고 그 결값은 꽤 강렬하게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다.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던 '미움받을 용기'란 책은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으로 위로를 건넸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나에게도

스스로를 향한 혐오를 거두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가 이 책을 접했던 건,

큰 서점의 베스트셀러 구간을 지나며 제목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미움받을 용기라니..'


이 세상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서 시기, 질투, 미움, 부정적인 모든 감정들과 말과 행동을 용기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예컨대, 어린아이의 경우 간혹 친구에게 관심을 끌거나

말을 걸고 싶어서 일부러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도망가거나

스스로를 뽐내고 싶어 하며 다른 친구를 괴롭히는 행동들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아이는 스스로가 미움받길 원하거나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애정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다만 방법이 어설프고 미숙한 탓이다.


어린아이조차상대의 미움을 받을 용기는커녕 미움이라는 감정에 대한 이해조차 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미움받는다는 것'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인 최근에 이 책의 제목이 생각났던 이유는, 내가 미움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 큰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앞자리가 3으로 바뀌고 나서부터는

타인의 시선에 대해 일정 부분 타협점을 찾기도 했다.


'그래, 어떻게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겠어. 나 역시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걸, '

그리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려 애썼다.


그런데 애를 쓰면 쓸수록,

칭찬 99개의 무게보다 비난 1개의 무게가 더 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비난의 내용은 내 마음속에 더 선명해졌다.


비난의 근원이 나에게 있고,

나의 잘못으로 인해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면 응당 내가 사과해야 할 일이다.


돌아보면, 살면서 내가 '나'이기 때문에 비난받을 일은 사실 없었다.

정말 없었던 것인지, 내가 무뎠기 때문인지, 상대방이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상식을 넘지 않으며

내 마음의 도덕성을 지키려 노력해 왔었다고 자부했다.




그러다 내가 미움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직장마다 분위기나 환경, 체계, 일의 처리 과정들이 다르니

업무가 익숙해질 때까지는 늘 배우려고 노력했고,

구성원 안에서 어울리려 부단히 도 애썼다.

도움을 구하거나 모르는 것을 물어볼 때는 '죄송하지만...'으로 시작해서,

방법을 이해고 나면 '바쁘실 텐데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로 끝났다.


내가 인사성이 바르거나 성실해서도,

인품이 훌륭해서도 아니다.

직장은 '도전! 최고의 친구 찾기'가 아니므로,

할 일을 해내는 것이 제일 우선순위의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직장에서도 좋은 인연을 만나 오랫동안 친구 같은 관계로 지낼 순 있어도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같은 직장에서 오래 보긴 힘들 것이다.

그래서 우선순위의 일들에 집중했다.


그러나 심히 하려던 것이 화를 불렀던 것일까.

어느 순간 99개의 칭찬은 온데간데없었고, 1개의 비난은 그 덩치가 너무 커져있었다.

게다가 내가 관여하지 않은 일조차 나의 잘못으로 여겨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구나라고 깨닫게 된 시점에는

하루 8시간의 근무 중, 나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을 제외하고서는 단 한마디도 내게 말 거는 사람이 없었다.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내가 모르고 지나친 잘못된 언행이 있었을까?

아니면 풀어야 하는 오해가 생긴 것일까?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하지?'


며칠 동안의 고민과 답답함이 지속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낮아졌다.


그리고 마음속에 '어쩌면 내가 그냥 싫은 것인지도 몰라. 다른 이유 없이 내가 나이기 때문인 것 같아.'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생겼다.

그림자는 생각들이 꼬리 물기에 적당한 습도와 온도였고, 나는 점차 어두워졌다.




시간이 지나자 억울한 감정이 들기도 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볼까 생각도 해보고,

내가 뭘 잘못했냐며 소리치고 싸우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방법 하나 내 마음이 편해지거나 상황이 나아질만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 자리에서 침묵하고 버텼다.

견딜만해서가 아니라, 힘들다고 해서 도망쳐버리고 나면 나는 영영 그림자 속에서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단 1%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난속에서

내가 나 자신을 미움받아도 되는 사람으로 낙인찍고 싶지 않았다.



도 여러 번 맞다 보면 요령이 생기기도 하고, 맷집이 생긴다고 했던가.

점차 익숙하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그리고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쯤

다시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하기 시작했다.


왜 나를 다시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지,

내가 왜 미움을 샀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묻고 싶은 마음도 없다. 잘잘못을 가르거나 이유를 들춰낸다 해서 득 될 것이 없기에.





현재 시점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은 그때를 생각해 보니 조금 더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사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던 생각은 나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진정 내가 '나'이기 때문에 미움받았던 것이라면,

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히 미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미움의 감정을 받아낸 나는 있지만,

누군가를 이유 없이 미워하던 사람들은 흔적을 감추었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미움받았던 게 아니라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인간관계는 어렵고, 혼자서 다수를 대하는 것은 더 어렵다.

누군가는 관계로 인해 트라우마가 남기도하고,

다른 누군가는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트라우마가 되어 또 다른 집단 안에서의 관계가 두려워지는 것도,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견딜 수 없어 도망치는 것도 모두 내 잘못이 아니다.

버티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므로,

충분히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길을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어떤 길을 선택하든지, 그럴 수 있다.

나는 나의 평온함과 행복이 우선이어야 하므로.




다만 금에 와서 아쉬운 점이 있다.

혼자였다는 이유로 그저 너무 나의 관적인 생각들로 나를 갉아먹었단 점이다.


조금만 객관적으로 한 발걸음만 떨어져서 나바라보았더라면,

나라도 내 편이 되어줬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용기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사과하되,

그렇지 않다무런 이유도 없이

미움받는 나를 응원하고 안아주기를.


그렇게 미움받을 용기를 낼 수 있었을 거라 믿는다.




누구에게나 이번 생은 처음이니까,

나의 서른두 번째 해는 또다시 새로운 날들이니까,

이제는 내가 나로서 미움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으니까.


미움받았던 과거에서 벗어나 교훈만 얻고 떠나기로 했다.

얻은 교훈을 다시 사용할만한 일이 없다면 좋겠지만,

반복된 학습에 나는 조금 더 단단하고 무히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온전히 24시간 나를 걱정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나 자신이므로,

든든한 내 편이 있으니 23시간 59분 정도 나를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미움받을 때조차 배짱부려도 좋다.


그리고 내가 '나'이므로 애정을 쏟고 사랑해 주는 이들에게 한없이 고마워하며 애틋한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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