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기원 라이프

꼼수가 난무하는 기원의 세계

by 조연우

담배가 자욱한 세상에서 바둑을 연마하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또래들과 바둑교실에서만 두다가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아저씨들과 할아버지들로 가득 찬 어른들 ‘기원’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원장님은 아마추어 7단으로 상당한 실력자셨다. 아저씨들과 바둑을 두고 원장님께 복기 받고 또 나머지 시간에는 혼자 프로기보를 놔보고 정석공부나 사활풀이 트레이닝을 했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아저씨들은 내가 배운 초반 정석들을 두지 않고 자꾸 변칙수를 들고나왔다. 알고 보니 아저씨들은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아 정석을 잘 모르지만 실전대국이 워낙 많아 온갖 변화구들로 자기들만의 정석을 만들어 두고 있었다.

아저씨들이랑 매일 난타전을 벌이며 바둑을 두고 깨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고 하루하루 실력을 연마했다. 그런데 초등학생에게 치명적인 게 있었다. 바로 기원의 자욱한 담배연기. 기원의 아저씨들 대부분 담배를 피우셨고, 나랑 대국에서도 예외는 없었다.(그래도 나랑 두실 때는 담배연기를 옆으로 뿜어주시긴 했다. 요즘 기원에서는 담배를 거의 안 피거나 흡연실이 따로 있다.) 그래서 하루 종일 기원에 있다보니 옷에 담배 냄새가 뱄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너한테 담배 냄새나” 이런 말을 종종 하기도 했다. 지금은 담배 냄새가 역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잘 견뎠다. 아니 담배 냄새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바둑에 미쳐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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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의 꽃 내기바둑

아저씨들이랑 1만 원짜리부터 많으면 5만 원짜리 내기바둑도 종종 뒀다. 초등학생이라 돈이 없었지만 원장님이나 다른 아저씨들이 나의 승리에 돈을 걸었다. 내가 지면 그분들이 걸었던 돈을 잃고 내가 이기면 반띵 하는식 이었다. 보통 거의 2만 원짜리를 많이 뒀는데 이상하게 돈이 걸리면 바둑 집중력이 높아져서 그런지 내 승률이 꽤나 좋았다. 승률이 7할~8할정도 됐던 것 같다.

2 만원 대국을 이기면 초등학생인 나에게 1 만원이나 떨어진다. 그걸로 햄버거 세트를 자주 사 먹었다.(그때 살쪄서 아주 통통해졌고 덩치에 맞게 밥도 엄청 먹었다. 라면 4개를 한자리에서 뚝딱했다. 아저씨 중 누군가 나에게 밥 2그릇이라는 별명도 지어주셨다). 그렇게 기원에서 1년 반 정도를 지냈는데 아저씨들이랑 온종일 생활을 함께 하니 지금도 아저씨들과 대화가 편하고 아저씨들의 언어나 비언어적인 것도 내 또래보다 훨씬 잘 캐치한다. 훗날 유튜브에서 도장깨기라는 컨텐츠를 할 때 기원 아저씨들이랑 잘 어울리며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기원 생활이 나에게 아주 큰 밑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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