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안전한 피난처는 어머니의 품속이다”라고 플로리앙은 말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품속이 안전할까?
화가 나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큰 소리부터 내는 엄마가 싫었다. 고등학교 어느 여름에 샤워를 하고 목욕통 안에 수도 잠그는 것을 잊어서 밤새 수돗물이 넘쳐흐른 적이 있었다. 이걸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발견한 엄마는 나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다. 아무리 수돗물이 아깝고 화가 나도 그렇지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의 큰 소리로 했어야 했나?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에 엄마의 크고 우렁찬 소리는 군대에서 아침마다 울려 퍼지는 기상나팔처럼 온 동네를 다 깨우고 소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하던 옆집 식구들은 난데없이 걸쭉하고 상스러운 말들을 스피커 옆에서 듣는 것처럼 귀를 막아가며 들었을 것이다. 40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도 그날을 상상하면 창피하고 분해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꺾이고 침울해진다.
평소에는 부처님같이 자비로운 미소를 보이다가도 가끔 같이 늙어가는 세 딸들에게 엄하고 욱하는 엄마. 평소에는 이해심이 넓다가도 뭔가를 함께 하게 되면 꼬투리를 잡고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한다고 핀잔을 주고 자기가 하는 걸 보라며 시범을 보여주는 엄마. 본인은 먼저 전화하지 않으면서도 딸들에게만 전화도 안 한다고 억지 부리는 엄마.
하지만 나는 한 권의 책을 읽고 엄마에 관한 관점을 바꿨다. 그 책은 전안나 작가님의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책이다. 고아원에서 지내던 작가님은 여섯 살에 양부모에게 입양되었다고 한다. 양 엄마는 입양 직후인 여섯 살부터 작가님을 줄곧 학대했고 양부는 그런 학대를 보고도 방치했다. 이런 환경에서 작가님이 느꼈을 공포를 생각하면 내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당장에 양어머니를 법으로 처벌해야 할 것 같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책에 있는 이야기는 뉴스에 나오는 잔혹한 아동학대 기사보다 더 지어낸 이야기 같다. 작가님은 결혼을 해서 집을 나오기까지 30여 년을 양어머니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다고 한다. 매일 뺨을 때리고, 죽으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하고, 집안일을 식모처럼 시키고, 월급을 몽땅 가로채고, 키워준 은혜를 갚으라고 위협하고. 이런 환경을 견디지 못해 작가님은 자살시도까지 했다고 한다.
작가님은 다행히 자신의 어렵고 고통스러운 긴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며 치유했고 지금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셨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만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덧난 상처를 드러내는 작가님의 용기가 멋있다. 약자의 위치에 있고 ‘태어나서 죄송하다’는 생각 때문에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작가님은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혼자서 잔혹한 고통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 외부의 도움이 얼마나 필요한지 잘 알기에 이 책을 써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심리학에 따르면 엄마와 딸은 서로 아끼면서도 미워하는 애증관계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엄마가 딸에게 자신의 결핍을 투사해서 딸을 자신으로 착각하고 서로 건강하고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다고 한다.
우리 엄마가 여섯 살일 때 4.3사건으로 황망하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신 엄마의 어머니는 아들은 학교에 보냈지만 농사일을 시키기 위해 딸인 엄마는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것이 엄마의 평생 한이 되었고 엄마는 독학으로 글을 익혔다. 만약에 어머니의 아버지가 살아계신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도 충분히 받았다면 엄마는 더 행복했을 것이다.
엄마는 세 딸들을 공부에서는 차별하지 않고 모두 대학교에 보내셨고 전문직에서 일하기까지 뒷바라지해 주셨다. 자신이 공부하지 못한 서러움을 딸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 자신의 인생을 우리처럼 마음껏 살아보지 못하셨다. 이제는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고생만 한 엄마의 일생을 이해해 드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