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유 Jul 01. 2023

모든 것을 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하루

편지 #1

K에게,


너의 아침은 어떤 모습일까.


꿈이 없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 후 이불을 개고, 정갈한 아침을 차려먹고, 바쁜 아침 시간을 쪼개서 짧은 운동도 마쳤을까. 아니면 밤새 뒤척이느라 피곤해진 몸을 겨우 일으키고 물 한잔 마실 새도 없이 진한 커피를 들이켜 잠을 깨웠을까. 물론 나는 네가 개운한 아침을 맞이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원하지만, 혹여 네가 너의 바람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늘, 아니 심지어는 여러 날에 걸쳐 피곤하고 우울한 아침을 맞이했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힘을 짜내서 어떻게라도 하루를 살아내기를 선택했다면, 그래서 다시 잠에 드는 시간까지 몽롱히 깨어있도록 노력했다면, 그런 네가 무척이나 대견해. 나는 건강한 몸과 정신을 지녀서 매일 아침을 개운하게 시작하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힘겹게 깨어있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 멋있고 대단해.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꽃밭에 편안히 누워있는 사람보다 진흙탕에서 열심히 발버둥 치는 사람이 좋아.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가.


일종의 자기 연민일 수도 있겠다.

나는 오늘도 모든 것을 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하루를 보냈어.

스치는 모든 잡생각이 머리를 꽉 쥐고 있어서 해야 할 일들 중 어느 하나에도 온전히 집중을 하지 못했어. 만일 우리가 생을 마감할 때 100%의 완성도로 끝마친 일의 개수를 기준으로 인생을 평가받는다면 나는 당연히 0점일 거야. 100%로 끝낸 일이 한 개인 사람과 각각 10%로 끝낸 일이 10개인 사람이 있다면 누가 더 성공한 사람일까.


나는 정답을 알 수 없지만 그런 단순한 척도로 우리 인생이 평가될 거라고는 절대 믿지 않아.

그거야말로 멍청한 생각이겠지.

그런데 나는 오늘도 100%의 완성도를 거의 달성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또 우울해졌어.

굳이 타인과 나를 직선 트랙 위에 세워두고 같은 종착지를 향해 달리는 모습을 상상한 거야. 그 게임에서 나는 단연 하위권이었고.


이따위 멍청한 생각에 다시 빠져들지 않기로 너에게 약속할게.

너는 나보다 똑똑하니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너도 나와 같은 생각에 힘이 든다면 그 밤, 낮게 뜬 달이 반짝반짝 빛이 나던 날 아무도 없는 컴컴한 축구장에서 숨을 헐떡이며 공을 차던, 아무 이유 없이 깔깔대며 웃어댔던 우리를 생각하자.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보다 훨씬 더 현명했어.


또 쓸게.

피곤할 때는 물을 마시고 우울할 때는 햇빛을 쬐는 걸 잊지 마.


친구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