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2
K에게,
내가 사는 곳은 오늘부터 며칠간 날이 어두울 예정이야. 구름이 잔뜩 낀 회색빛 하늘. 오다 멈추다를 반복하는 애매한 양의 비. 딱 내가 싫어하는 날씨지. 네가 있는 곳의 하늘은 하늘색 바탕에 하얀색 구름이 몽실몽실 떠 다니는, 흡사 픽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길 바라. 좋은 날씨는 저절로 우리를 기분 좋게 하니깐.
오늘 내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 눈을 뜨자마자 갑자기 운동이 하고 싶어진 거야. 매일 운동하겠다는 계획만 세워놓고선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우울하다거나 하는 이유로 몇 주째 실행에 옮기지 못했었거든. 이때다 싶어서 빨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고양이 세수만 하고서 아파트 헬스장에 갔어. 첫 20분 정도 런닝머신을 뛰고 나머지 20분은 근력운동을 했어.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고 집에 왔는데 몸이 이상했어. 마냥 개운하고 힘이 나는 게 아니라 몸이 놀란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니깐 몸이 놀랐나 봐. 속이 안 좋아서 바나나 하나만 먹고 샤워를 했는데 몸에 여전히 힘이 없어서 한동안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어. 약간 후회됐어. 괜히 운동했나...?
영화 같은 거 보면 주인공이 좋은 행동을 하면 좋은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잖아. 운동을 하니깐 몸이 근육질로 변하고 패션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니깐 갑자기 퀸카 킹카가 되는 클리셰 말이야. 헬스장에 가는 나는 스스로가 그런 영화의 주인공인 줄 착각하고 즉각적인 변화를 기대했던 것 같아. 꾸준히 하다보면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가 찾아오겠지?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 어디서 많이 주워들은 말이야. 당연한 소리인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깐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 어는 날은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몸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반대로 건강한 몸이 건강한 정신을 만들기도 해. 우울할 때 유산소 운동을 열심히 하면 우울함이 잠시 잊히고, 몸이 아파서 누워 있을 때 좋은 사람들이 가까이서 챙겨주고 걱정해 주면 빨리 낫지만 혼자 끙끙되면 더 서럽고 아파지잖아. 나는 과학을 모르지만, 몸과 정신은 여러 가닥의 실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 같아. 한 명이 아플 때 다른 한 명이 도와주도록. 어려움이 닥칠 때 둘이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를 분주히 설득하고 있을 것 같아.
몸과 정신이 균형을 이루는 것을 좋아하듯이 감정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우울할 땐 웃긴 영화, 기쁠 땐 우울한 영화를 보는 게 순리에 맞아. 빵빵한 풍선엔 바람을 조금 빼주고, 바람 빠진 풍선엔 바람을 불어주는 거야. 나는 오늘 꽤 즐거운 하루를 보냈으니 저녁엔 조금 무거운 영화를 보려고 해.
미안. 쓸데없는 말들을 너무 많이 늘여놓았네.
네 얘기도 들려줘. 궁금해.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