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3
K에게,
잘 지내고 있지? 오늘 너는 어떤 하루를 보냈을지 궁금해.
동네 카페에서 따뜻한 라떼를 먹으며 잔잔한 아침을 시작했을까. 그랬다면 카페에 가는 길에 몇 명의 사람들과 마주쳤을까. 밝게 웃으며 눈인사를 했을까 아니면 눈 맞춤을 피하려고 땅만 보고 걸었을까.
난 말이야, 얘기할 거리가 없는 하루를 보냈어. 사람이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거든. 에너지가 평소보다 적은 날에는 타인과 같은 공간 안에 있으면서 그 사람이 나를 보게 하는 일이 너무 두려워.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지 않은 날이면 온종일 집에 있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그런 상황들을 손쉽게 회피해 버려. 회피는 건강하지 않은 대응 방식이지만 가장 쉽고 위험이 적은 방식이기도 해.
병이라고 하기엔 내 기억이 시작하는 시점부터 나는 항상 이래왔어. 어떤 병으로부터 나아지기 위해서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예전의 건강한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나에겐 그런 모습이 애초부터 없었어. 사람이 전혀 무섭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삶을 살아갈지 나는 도통 모르겠어. 그런 걱정을 할 시간에 다른 걱정을 할까? 사람마다 걱정의 총량은 같을까 다를까? 정말 궁금해.
이런 성격의 가장 큰 단점은 자기혐오를 동반한다는 거야. 사회적 기술의 부족은 내 무능력과 비정상성을 상징하는듯해서 곧바로 자기혐오의 감정으로 이어져. 이런 내가 싫어서 더 숨게 돼. 타인의 침묵을 부정적인 신호로 해석하는 습관도 상황을 악화시켜. 나와 마주친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거나 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거라고 추측하고 혼자 상처받아. 바보 같지? 나도 이런 나를 이해하기 어려워.
대충 살자.
무책임한 말이지만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마음이 끝없이 추락할 때 대충 살자라는 말이 나에겐 더없는 위로가 돼. 삶이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갈 때 삶의 허무함을 기억하자. 때때로 우리를 살게 하는 건 거창한 말이 아니라 누군가 장난 삼아 툭 던진 말이었어.
오늘따라 우리가 서로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터졌던 날들이 생각나.
조만간 우리 둘 다 여유가 생기면 가까운 곳으로 같이 여행 가자. 꼭.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