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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명 고민중 Aug 25. 2024

일요일 저녁

아줌마의 무작정 혼자 외출하기


부서가 바뀌고 적응기를 보내고 있다.

한동안 사무실로 새벽에 출근도 해보고, 저녁 늦게까지 근무도하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하였다. 그럼에도 뾰족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탓에

이번 주말은 그냥 쉬었다. 멍한 주말 보내기는 휴가 없이 일해온 스스로에게 당연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토요일은 필요한 행위만 하고 계속 잤고,

일요일인 오늘도 최소한의 활동만 하면서 계속 누워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아직 잘 쉬는 법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종일 게으름 부리다가 갑자기 오후 5시 정도에 남편에게 외출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알겠다고 하더니만 대뜸 애들 먹을 카레를 어쩔 거냐고 했다.

’ㅋㅋㅋ 맞다 애들 먹을 거는 챙겨야지.‘

남편더러 감자, 당근, 양파를 다듬어 달라하고, 카레를 한 냄비 만들어 놓고 차키 등을 주섬주섬 챙겨 나왔다.


바다를 보고 싶었다.

서쪽으로 갈까, 동쪽으로 갈까.

아파트 주차장에서 스마트폰으로 맵을 보면서 서성였다.

서둘러서 서쪽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향하면 낙조를 볼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차를 타고 시동을 걸고 혼자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다대포‘를 검색했다. 차가 움직이고 네비가 안내를 시작했는데,

신호 대기 중에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일광’으로 경로를 바꾸었다.


수많은 교차로를 지나 동쪽으로 향했다.

남편이 출근길에 이용하던 동해선도 보았고,

몇 달 전 오복이를 입양했던 유기동물보호센터 근처도 지나 꽤 먼 거리를 운전해서 일광에 도착했는데, 바닷바람이 축축하고, 차가웠다.

벌써 어두웠고, 해무로 가득 찬, 내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던 해수욕장 풍경이어서 다소 실망했다.

근처 카페를 찾았지만 그렇게 끌리는 곳이 없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발걸음을 돌려 주차장으로 향했다.


살짝 허기가 져서 요기라도 할까 싶어 근처 편의점을 들렀는데, 그 주변에서 묵는 듯한 젊은 여성일행이 밤에 먹을 간식거리를 고르는 모습이 부러웠다.

휴가지에서 다음날 출근 걱정 없이 편한 차림으로 과자와 음료수 등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뭘 살지 고르다가, 그냥 나와버렸다.


바로 집으로 갈 마음은 아니었던 터라 다시 네비를 검색했다.

임랑스벅을 목적지로 정하고 무작정 갔다.

같은 부산이라도 교외지역처럼 조용한 국도를 운전하는 일은 꽤 낯설고, 기대하지 않은 경로여서인지 좀 더 즐거웠다.

무사히 도착했고, 주차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대충 차를 세워놓고 재빨리 음료만 주문해서 나오려는데,

대기하는 동안 주차할 자리가 생겨서 차를 옮겨 세웠다.

빈 테이블을 찾아 앉아서 폰을 충전시키면서 음료도 마시고, 디저트도 먹고, 사진도 찍고, 잠시나마 멍도 때렸다.

남편에겐 수수께끼처럼 카톡으로 내가 어디 있음을 알렸다.

혼자라서 어색하지는 않았음에도, 같이 못 와서 아쉽다고 하였다;;;

집과 일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혼자서 놀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들 시선에 아랑곳 않고 시그니처 곰인형과 사진을 찍고, 어두운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한 시간 정도 빈둥거리다가 다시 집으로 향했다.

미리 챙겨 둔 사료를 집 근처 길고양이에게 나눠 주었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남편이 중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 준다. 나도 남편이 반가웠다.

무사히 귀가해서 내가 만든 카레에 식은 밥으로 간단하게 밤늦은 혼밥을 하고 나니, 잠이 깬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지만, 혼자 계획 없이 밤마실을 나섰다는 게 쏠쏠하게 재미있었다.


오늘 밤 나들이를 정리해 보니,

나란 인간은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꽤 본전을 건지는 편이란 생각이다. 그러려면 건강을 챙겨야 한다.

이만 총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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